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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다고 하기엔 너무도 아름다운 눈 덮힌 산에서 펼쳐지는 남녀 간의 썸
전혀 성격이 다른 두 남녀가 만났다.
남자는 내성적이다. 몇 번이고 자기 이름만 얘기하고 성을 얘기 안 한다.
반면, 여성은 엄청 개방적이다. 자기 이름이고, 자기 결혼이며 사정들을 다 얘기한다.
이렇게 직업도 다르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고, 생존하는 방식도 다른, 정말이지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두 사람이 생사의 길에서 홀로 남겨졌다.
사실, 삶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나랑 마음이 맞는 사람이랑만 살 수는 없다. 어떻게든 마음이 도무지 안맞는 그들과 함께 살아내야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너무 힘겹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살아가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다.
둘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한 후 사랑을 나눈다. 그 후 여주인공 알렉스가 벤에게 말한다.
"벤. 생각해봤는데 길이 있을 거예요. 아주 가까운 곳에..."
벤이 이어 말한다. "찾아 볼게요. 우리가 갈 길을..."
물론 이 대사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왠지 이 대사는 서로의 상황을 대변하는 대사인 것 같기도 하다.
둘은 서로 사랑해선 안되는 사이다. 남자 쪽에서는 실연한지 2년이 돼서 괜찮다고 하지만, 여자 쪽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조난 당하고서 제일 걱정한 것도 약혼남 마틴(?)이었다.
하지만 둘은 결국 생존의 낯선 과정을 겪으며 연결되었고, 이윽고 잠자리로 치닫는다.
이런 배경으로 저 대사를 생각해본다면 또 다른 의미를 가진 대사가 될 것이다.
도덕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들은 선택해야만 했다.
영화에서는 두 갈래 길이 연속적으로 나온다.
처음에는 비행기 안에서 계속 지내면서 구조대를 기다리느냐 아니면 밑으로 내려가서 마을 찾느냐 두 갈래 길이 나온다.
나중에 내려가다가 절벽이 나오고 그 밑을 뛰어내리느냐 아니면 다시 올라가느냐 두 갈래 길이 또 나온다.
서로 사랑을 할지 말지 고민하며 두 갈래 길이 나오고, 남자가 혼자 길을 떠날지말지 두 갈래 길이 나오며, 그들이 구조되고서도 다시 연락을 하느냐 마느냐의 두 갈래 길이 나오기도 한다.
살면서 수많은 두 갈래 길이 나오고 우리는 그것들 가운데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어떤 것을 선택해도 그것은 진행되어 간다. ‘어떤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라며 과거를 회상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우리는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선택해보지 않은 삶을 살아볼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비행기에서 기다리면서 구조대가 올 수도 있었을 것이고, 막다른 절벽을 만났을 때 점프해서 살았을 수도 있다. 서로 잠자리를 갖지 않고 구조된 후 약혼남 마틴과 여주인공이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겪어보지 못하는 기회비용 뿐이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의 삶이 지나가게 되는 것뿐이다. 우리가 선택한 것에 대한 여파(aftermath)를 당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두 갈래 길을 맞이했을 때, 어떤 것이 더 나았을 텐데 후회하기보단 내가 선택한 것을 묵묵히 겪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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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영화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영상미와 사운드가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만약 저 상황에 처했다면 생존하느라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겠지만, 영상으로만 봐서는 최고의 설경으로 여길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거기에 깔리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꼭 Ludovico Einaudi의 음악처럼 들렸다.
2.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상황에 대한 사실성이다.
물론 처음부터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수긍할 수 있는 이해의 범위를 벗어났달까.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갈비뼈가 부러지고서도 남자 벤은 잘도 산을 탄다. 거의 암벽 수준이던데... )
3. 사실, 이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예전 해리슨 포드 주연의 [식스 데이 세븐 나잇]이 기억날 것이다.
그 영화의 소재 또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남녀가 불시착으로 인해 생존하면서 서로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이다.
마돈나가 주연했던 [스웹트 어웨이] 또한 위 영화와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영화가 가진 소재가 그리 신선하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해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주는 것이 소재의 신선함, 충격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영화 내내 흐르는 잔잔한 음악과 더불어 눈부신 영상이 보는 내내 영화에 빠지게 만들었다.
거기에 두 남녀 주인공의 열연 또한 이 영화의 품격을 더했다고 볼 수 있다.
쉽지 않았을 촬영이었을 텐데 연출이며 연기 모두 찬사를 받기에 자격 있다.
(개가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듯이 ㅎㅎ)
4. 단지 러브스토리 뿐 아니라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전혀 다른 공간에서 지내온 두 사람이 만났을 때의 갈등. 그리고 화합.
낯선 곳이 주는 설렘.
두 갈래 길에서의 선택.
선택 뒤에 따라오는 여파들.
이 모든 것을 생각하게 만든 좋은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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