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으니 남긴다

야고보는 왜 사라졌을까[신약성경이 숨긴 야고보를 찾아서]

거니gunny 2020. 1. 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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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신약성경이 숨긴 야고보를 찾아서]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진리 해부]를 통해 해부당한 듯한 느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옥성호 씨의 또 다른 신간을 만났다.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바울은 "역사상 최고의 신학자요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세운 사도"였다.

요한복음이라는 개관 복음이 있기 때문에 공관 복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도 배웠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성찬식은 지금까지도 지속되어왔다고 배우기도 했다.

교회에서는 이런 모범답안을 잘 배우고, 앵무새처럼 대답해야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속으로는 말 못 할 고민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은 고민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불신과 무지함 때문에 생긴 것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여러 책들을 통해 알게 될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과거에 했던 고민들이 거의 잊힌 상태다.

이 책을 보면서 이제야 내가 고민했던 것들이 쓸데없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책만이 가진 여러 장점들이 있다.

 

첫째로 그동안 당신이 갖고 있던 성경에 대한 고정관념이 엄청나게 깨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원래 옥성호 씨의 책은 늘 그렇다. 내가 간과했던 부분들이 사실은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들이었고, 나 또한 편견에 많이 사로잡힌 크리스천이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지난 [진리 해부]와 이 책은 그 강도가 차원이 다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 없이 읽어온 4복음서와 갈라디아서였는데 이 책의 설명을 보고서 다시 읽으려고 하니 전혀 새로운 성경이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이 책에서 제기한 의문점들은 대부분 기존에 믿고 있는 신념들과 상충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더 충격일 수밖에 없다. (급기야 "이 모든 것은 다 바울 때문이다."라고 바울 음모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둘째로 그가 제시한 팩트들이 늘 기독교 서적에서 마주치는 참고문헌들이 아니기에 신선함과 재미가 있다.

'조만간 이 사람 유대교로 개종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필로와 요세푸스를 비롯한 여러 역사 문헌부터 시작해서 유대 랍비 동영상까지, 입체적인 이스라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다각도로 여러 문헌들을 접근한다.

 

셋 째로 성경책을 가까이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이 책은 이단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단 글을 봤을 때의 반응과 똑같았다.

가끔 이단 설교 영상이나 전단지를 우연히 보면,“엥? 설마 진짜 그러려고? 그 구절이 그런 거였어?"라며 다시 한번 성경을 뒤적거리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독자 대부분은 이 책 옆에 성경책을 놓고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성경을 더 가까이 하게 되었으니 긍정적인 효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쉬운 점도 많았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이 쓰인 독특한 상황성과 영감성을 동시에 믿는다.

이를테면, 마태가 쓴 대상이 누구이며 그의 문체가 당시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마태가 순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써서 마태복음이 완성되었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의 영감성을 믿는다. 그래서 마태가 마태복음을 물리적으로 썼지만, 성령의 간섭으로 결국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되었다고 믿는다.

저자가 [진리 해부]를 통해서도 밝혔듯이 성경도 권위를 가지려면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믿을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개입하심도 인정해야 한다.

존 파이퍼는 [Does God desire all to be saved?]라는 책에서 상호 모순되는 말씀들을 "신비로운 말씀"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고백하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는 여전히 3차원 안에서 밖에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양다리일 수도 있다. 나도 안다. 그러나 그렇게 가야만 한다. 신앙 자체를 등지게 되면 삶의 희망도 없게 되니까 말이다. 신앙 앞에서는 소심하게 반항하는 겁쟁이가 되고 싶다.

 

제일 아쉬웠던 점은 그가 제기한 팩트들이 아니었다.

그가 상상했던 예상들이었다.

왜냐하면 그 예상의 결과는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잘생겼나 못생겼나" 정도로 따질만한 예상이 아니었다.

저자가 다양한 책들과 문헌들, 그리고 영상들을 참고 자료로 제시한 것은 좋다.

그 자료들을 토대로 저자의 논리를 펼치는 것 자체는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자료들"만"으로 너무 쉽게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의 결과를 도출하려면 아예 신약 전체를 다루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갈라디아서와 4복음서만 얘기할 게 아니라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유다서 등 다른 서신서들도 보면서 함께 문제를 지적하고 예상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게다가 충분히 다른 해석도 가능한데 한 쪽으로 치우쳐서 얘기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4복음서에서 세례요한이 이랬다가 저랬다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태중에서부터 예수님을 찬미했고, 예수님에게 세례까지 베풀었던 그가 마태복음 11장에서는 너무도 다른 사람처럼 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다가도 이내 실망해서 원망하지 않은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구름으로 직접 봤으면서도 며칠 후 우상숭배를 했고, 엘리야도 갈멜산에서 대승을 거둔 뒤 이세벨을 무서워해서 로뎀나무로 도망가지 않았는가. 세례요한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는 복음서 기자들이 모두 자기 마음대로, 자기 의도대로 복음서를 지어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마가복음은 마태가 참고하면서 자기 생각을 곁들여 썼다고 하고, 누가복음은 마태복음에 추가로 지어냈다고 말한다. 마치 복음서 저자들이 소설가라도 되는냥 말하는 건 도가 지나친 억측일 수 있다.

우리는 복음서 저자들이 "영감을 받아”라고 쓴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저자가 말한 대로 소설가가 되어서 없는 얘기를 창작해서 집어넣고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책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아 이제 이분은 한국의 어떤 교단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초인'이 되셨구나’이다.

이 정도면 거의 교회를 비판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독교 자체를 까는 책이다.

지난 진리 해부보다 더 신랄한 비판으로 복음서와 갈라디아서를 조명한다. 마치 워룸에서 전략을 짜듯 단단히 벼르고 이 책을 냈다고 느껴질 정도다. 저자가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무신론자나 타종교를 믿는 자"가 출간했다고 믿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을 다 읽고서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너무 궁금했다. 이 어마어마한 책이 다른 이들에겐 어떻게 소화가 되었을지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쓰레기네, 어디서 감히 이런 책을 들이밀고 있어?"라고 한 독자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반응은 당혹스러웠지만 유익했다는 평이었다. 필자 또한 그런 의견에 동의한다.

 

이 책의 목적은 심플하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깐깐하게 건강을 챙기듯, 자신의 신앙도 깐깐하게 따져보며 고민하는 것이다.

이 책을 집기만 해봐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은 보장합니다. (그게 판도라의 상자인 것은 안 비밀.)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이 결론이 아닌 과정"이라고 말한다. 과정이기 때문에 과격해 보일 수도 있고 이단같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진짜 예수를 아로 싶어 했기에 사람들이 가르치는 예수 말고 진짜 예수를 원했다. 데카르트처럼 철저히 회의하면서 다가가는 모습이 힘겨워 보이지만(그것을 읽는 나도 힘들다.) 결승선이 보였으면 좋겠고 잘 골인했으면 좋겠다.

 

P.S.:

1. 미드[닥터 하우스] S08E12에서 예수님의 죽음 날짜가 다르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

꽤 오래전 드라마인데도 그 언급이 일반 드라마 대사에 나왔다는 건 미국은 그 정도로 이 사실을 만연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고민이 있어왔다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유주의는 위험한 신학&개혁주의는 좋은 신학"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런 고정관념부터 버리는 게 맞는 것 같다.

 

2. 거대한 의문이 하나 든다.

왜 하나님은 바울의 신학이 신약 전반에 걸쳐서 진행되도록 “묵인”하셨을까?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인간 역사에 개입하고 계시다면 성경이야말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데 왜 이렇게 믿을수밖에 없게 만드셨을까?

그 답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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