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으니 남긴다

첨단 기술 속에서 발휘하는 양심 [망내인]

거니gunny 2020. 1. 12.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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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망내인]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찬호께이의 소설은 4D 영화 같다.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체험하게 한다.

 

주인공 ‘아이’는 가족이라고는 동생 하나 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자기 곁을 떠나게 되는 비극이 발생한다.

도대체 왜 우리 동생 ‘샤오원’에게 이런 비극이 발생한 걸까?

 

책 제목 [망내인]답게 인터넷 용어들이 많이 나오는 추리소설이다.

IT 용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컴퓨터 언어에 익숙지 않은 이들은 조금은 거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첨단 IT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국내 카카오톡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인터넷과 친밀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책의 IT 기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리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책은 ‘아이’라는 컴맹 캐릭터를 통해 우리에게도 반복적으로 알기 쉽게 IT 기술들을 설명해 준다.

 

*주인공 아이

주인공 ‘아이’는 꽉 막힌 아이다. 인터넷을 모르는 컴맹 때문만은 아니다.

사사건건 아녜가 하는 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하고, 심지어는 방해를 해댄다. 물론 자기가 의뢰인이고, 정식으로 의뢰에 대한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사건 조사 진행과정을 알아야 하는 권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녜의 실력을 그 정도 봤으면 좀 아녜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게 정상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꽉 막힌 캐릭터다.

오히려 아녜보다 아이가 럭비공처럼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아무리 자기 동생 때문이라지만 너무 감정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대한다는 게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흐뭇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했던 그녀의 행동들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아녜

‘아녜’는 마치 미드에 나오는 [닥터 하우스]와도 같았다. 흥미로운 점이 보이지 않고 눈에 뻔히 보이는 문제들은 아예 풀려고 하지 않는 것 말이다. 생각하고 추론할 필요가 없는 질 낮은 의뢰는 거부하는 아녜.

어찌 보면 '아녜'는 [13.67]의 '관전둬' 형사와 많이 닮았다.

목표가 뚜렷하고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불법을 행해서라도 이루고야 만다는 정신이 깃들어있다. 불법을 저지른 자들에게 굳이 불법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범인들과 주변 아군들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일들을 벌이고 해결한다.

그리고 둘 모두 약자를 깊이 생각하는 따뜻함이 있다.

물론 차이가 있다면, 아녜는 관전둬처럼 형사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이 넓다. 그래서 더 기상천외한 방법들로 사건을 주무른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도구로 만들어 의뢰인에게 칼을 쥐여준다. 자신은 선악을 결정하지 않는 옵저버일 뿐이다.

 

처음 찬호께이 작품을 접했을 때는 단순히 추리소설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추리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작가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추리보다 훨씬 진지하고 무게 있는 이야기였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묘미인가 보다.)

 

[13.67]에서는 추리의 기술에 심취해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찬호께이는 우리에게 흑과 백이 무엇인지 묻고 싶어 한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망내인]은 사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흑과 백.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한 일도 서슴지 않은 그림자도 있고,

법과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을 구치 않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빛도 있다.

그러나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 중 누구도 ‘흑’자체인 사람도 없고 ‘백’자체인 사람도 없다.

회색 지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만큼은 ‘백’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의가 무엇이고 양심이 무엇이고 선과 악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그 말을 섣불리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주인공 ‘아이’가 거대한 이야기를 깨달았을 때 느꼈던 느낌을 우리 또한 느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이런 일들이 이들에게 벌어졌어야만 했는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런 일들이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리라는 법이 없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복수를 담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복수와 용서가 전부가 아니었다.

때로는 타인의 욕심으로 내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이 던진 부메랑처럼 내 잘못으로 인해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소설은 페이지 수가 무려 700쪽에 달한다.

하지만 그만큼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책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문과와 이과가 만나면 이런 재밌는 소설이 나온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13.67]에 이어서 또 다른 흥미진진함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단순히 추리게임에 불과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책을 덮고 나서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P.S.: 핸드폰 지문인식을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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