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책[13.67]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바로 이거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전율이 돋았다.
아니, 책의 '마지막 쪽'까지도 얘는 나를 소름 돋게 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사회 추리소설”은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전에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이들은 인물들의 사연에 초점을 두고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 자체를 관조하는 식의 글을 쓴다.
그래서 뛰어난 추리 기술이라든지 서로 속고 속이는 심리싸움은 이들의 소설에서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번 소설 13.67은 흡사 코난 도일 의 셜록 홈스를 보는 듯하다. 기상천외한 범죄 방식부터 시작해서, 그러한 범인의 심리를 꿰뚫는 추리까지 구경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단순히 범인의 트랩을 간파한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범인이 생각해낸 꾀도 대단했지만 그것을 간파해내는 형사 관전둬의 통찰력과 함정까지 정말 대단하다. 범인을 잡아내는 방식 또한 기상천외하다.
이 작가에 푹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된 독특한 수사기법은 이야기를 더 돋보이게 하는 장치이다.
흔히 추리소설이라 하면 결말 부분에 “따란”하고 반전의 묘미를 주는데, 이 책은 끝났다 싶었을 때 한번 더 멱살을 끌고 간다.
보통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웬만한 반전은 놀라지 않는다. 추리 만화도 많이 보급되어 있고, 소설로도 추리소설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많이 보급되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추리와 반전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고 할 수 있는 독자들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이미 추리 내용을 다 보기도 전에 반전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이 책 [13.67]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시시한(?) 반전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 전개가 터무니없다거나 갑자기 이게 다 꿈이었다거나 그렇게 마무리 짓지 않는다.
마치 어려운 외줄타기를 능숙하게 하는 광대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들었다 놨다 하며 깔끔하고 섬세하게 마무리 짓는다.
(특히 마지막 결말을 다 보고 나서의 느꼈던 충격과 전율은 오래갈 것 같다. 이 책을 다 본 사람이라면 아마 같이 느꼈으리라.)
게다가 이 소설은 각 챕터마다 사건의 종류도 다르다.
심문 수사, 탈옥, 증인 보호, 인질극 등 지루할 틈 없이 신선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이점은 이 책이 단순히 추리소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매 챕터마다 홍콩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집어넣음으로써 홍콩의 현대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사회 추리 소설”이라고 명명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다는 정도로만 알지 그 당시 상황과 배경을 알기가 쉽지 않다. 세계사를 배울 때도 홍콩에 관해 우리가 배우는 내용은 그리 많지도 않을뿐더러 우리와 실제 거리가 떨어져 있다 보니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당시 홍콩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추리해 나간다. 때문에 독자인 우리는 저절로 홍콩을 배우고 알아가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관전둬”형사의 세계관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그는 단순히 범인을 잡는 똑똑한 형사가 아닌, 신념을 가지고 사회의 체제 가운데 고민하며 행동하는 지성인에 가깝다. 자신의 행동이 표면적인 법망 체계 안에서 옳은 가를 고민하기보단, 자신이 이것을 하는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동기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으면서 행동해 나가는 형사이기에 우리는 이 형사를 통해 감동을 받는다.
뇌물을 받는 경찰 사회에서 자신은 그저 개인적으로 안 받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는 범인을 눈앞에 두고서, 법을 어떻게 다루고 행동해야 하는지는
사실 우리에게도 찾아오는 질문들이다.
법과 도덕, 그리고 나 자신.
이러한 갈등과 긴장관계를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관전둬 형사는 우리에게 하나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는 형사가 아니지만, 우리의 자리에서 “나처럼 해보세요.”라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를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볼까?’라는 상상의 나를 그려보기도 한다.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내 몸의 비율과도 잘 맞고, 옷 자체로도 멋이 있어야 한다.
[13.67] 내 몸에 딱 맞는 추리소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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