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으니 남긴다

현실은 차디찬 얼음물이란다[남한산성]

거니gunny 2021. 1. 2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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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왜 남한테 의지만 하고 살면 안 되는지 여실히 보여준 영화. 

정반대로, 왜 고집을 피워서는 안 되는 지도 보여주는 역설적인 영화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다.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아무리 첨단과학 시대를 살더라도 인간들은 똑같다. 

아무리 아픈 과거라 할지라도 그것을 직시하지 않고 미화만 한다면 또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 [남한산성]은 더욱 그 의미가 깊다.

 

이미 수년 전 개봉한 오래된 영화인 데다가 (2017년)

천만 관객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350만 명에 그친 영화였지만 그 어떤 한국영화보다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이 영화가 달랐던 점은 '선과 악의 이분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늘 이분법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선인과 악인. 

히어로와 악당. 

이런 이분법이 있어야만 뇌는 혼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한쪽을 선인으로, 다른 한쪽을 악인으로 그려내지 않았다. 

 

악인처럼 보였던 청나라도 따지고 보면 악인이 아니다. 

철저한 약육강식 논리에 따른 강자일 뿐이다. 

청나라는 심플하다. 조커처럼 상대방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펼치지도 않았다. 

"좋은 말 할 때 나와라." 이 말 뿐이었고, 그 태도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내 있었다. 

 

같은 편이었던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이 아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자들 투성. 

신분이 다르다고 깔보는 안하무인의 사람들. 

평소에는 철저하게 이용해먹다가 위기 때에만 "정의, 옳은 것, 희생"외치는 자들. 

청나라보다 더 고구마 같이 생긴 자들이 너무 많다.

 

 

오히려 영화는 외세에 초점을 두기 보다, 안에서의 갈등을 지켜본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도 서로 으르렁 거리며 싸우는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꾼다.

최명길, 김상헌 두 진영 모두 나라를 위한 충심만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우리의 현실과 정말 닮은 점이 많다.

 

목표는 같지만 너무도 다른 방법들. 

하나를 선택하면 반드시 결과는 달라지게 될 것인데,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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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든다. 

더 이상 역사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검증된 김훈 작가의 원작 소설이 이야기의 축을 담당했다. 

 

 

1637년 인조 시절 겪었던 "삼전도의 굴욕", "병자호란"은 교과서에서도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치욕 TOP5" 안에 들어갈 만큼 부끄러운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소설화시킨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을 거다. 

김훈 작가는 그만의 특유의 문체와 플롯으로 이야기를 잘 그려내었고, 이렇게 영화로까지 쓰일 수 있게 됐다. 

 

치밀한 황동력 감독의 연출력도 돋보였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는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캐릭터와 논쟁이 가슴에 와 닿았다. 다른 생각과 철학을 지녔지만, 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철학적이면서도 처절하고, 시 같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말들에도 매료됐다. 또 하나는 소설에 묘사된 남한산성 안의 풍경과 그 속에서 벌어진 일들, 한겨울의 살풍경한 모습은 창작자로서 영상으로 옮겨보고 싶을 정도로 강렬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담아냈다"는 말이 허투루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열연을 볼 수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액션이 뛰어나고, 스토리가 치밀하다지만 

역시 이 영화의 백미는 최명길(이병헌)과 김상헌(김윤석)과의 썰전일 것이다. 

 

둘 모두 상대방에게 지지 않으려 으르렁대지만 단순히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말싸움이 아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뱉는 피맺힌 설득이요 절규였다. 

 

이 외에도 박해일, 박희순, 고수 등 초호화 연기를 한 영화에서 다 볼 수 있어 

한국영화사적으로도 대단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현실은 권선징악이 뜨뜻미지근한 전래동화가 아니다.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차디찬 얼음물이다. 

오늘도 우리는 억울한 이들의 소식을 뉴스를 전해 듣는다. 

 

착한 사람들은 여전히 바보 취급을 받고 있으며,

악한 사람들은 여전히 순진하게 자기를 믿어주는 착한 사람들 등을 칼로 후비며 배를 채우고 있다.  

 

 

반대로, 순수한 이상에 사로잡혀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인정할 때 인정하는 것이 발전의 시작인 것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면 영화처럼 죽음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삶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대의와 명분도 있는 것이 아니 옵니까."(최명길)

 

각본, 연출, 연기 삼 박자를 고루 갖춘 뛰어난 영화를 오랜만에 만났다.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은 "실화"라는 점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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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남한산성을 보고 나서 뒷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좀 찾아보았다. 

인질로 잡혀갔지만 청나라의 놀라운 문화 수준에 반성하고 조선을 개화시키려던 첫 째 아들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고, 아버지 인조의 굴욕을 복수하기 위해 청나라를 토벌하려고 했던 "효종(둘째 아들)의 북벌 운동"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내 인생도 결국 인조와 같은 선택의 순간들이 올 것이다. 

청나라를 택할 것인가, 명나라를 택할 것인가.

최명길의 말을 들을 것인가, 김상헌의 말을 들을 것인가.

복수를 꿈꿀 것인가, 그냥 닥치고 조용히 살 것인가.

 

내 결론은,...

 

가슴은 김상헌을 닮을 것이고, 

머리는 최명길을 닮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 헛된 것에 목숨을 바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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