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주 따뜻하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과학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해서 천국도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드라마 분위기는 상당히 잔잔하지만 그 내용만큼은 엄청나게 요동칩니다.
죽음을 앞둔 모든 인간에게 현재와 죽음 이후를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
드라마 “욘더”, In English, yonder
바로 시작합니다!
오늘은 드라마 “욘더”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욘더”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공간, 가상의 천국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윤리를 조금만 바꾼다면 무한의 행복을 가질 수 있다고 한 과학자가 설명합니다. 과연 그 행복이 가능할까요?
한국 영화의 거장 중 한 명인 이준익 감독이 처음으로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첫 드라마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는데요. 그 베일에 싸인 작품이 얼마전 방영됐습니다. OTT 플랫폼 티빙 오리지널로 말이죠.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자 그럼, 우선 드라마 “욘더” 줄거리부터 알려 드릴게요.
Here’s the summary of yonder
가까운 미래 2032년 한국. 재현은 슬픈 표정으로 아내 차이후를 바라봅니다. 심장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 안락사가 인정된 사회였기 때문에 재현은 아내가 원하는대로 안락사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안락사를 시행하기 바로 전, 누군가가 집 초인종을 누릅니다.
의문의 여성은 바로 아내와 약속이 있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그녀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며 남편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당황한 남편이지만 아내의 승락이 받아들여지고 아내의 지인이겠거니 생각하며 자리를 비켜줍니다.
수상한 여인은 이상한 스티커를 아내 이후 귀 밑에 붙여주고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납니다.
몇 시간 후 슬픔 속에 진행된 안락사.
그런데 다음날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죽은 아내 이후에게서 이메일이 계속 들어옵니다. 그것도 영상 이메일로요.
재현은 처음엔 스팸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낍니다.
도대체 죽은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찾아온 걸까요?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알고 보니 아내가 만났던 그 여인이 붙여준 “브로핀”이라는 칩이 이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죽음 이후 천국을 만들었다는 닥터 케이의 광고가 계속 생각이 납니다.
아내는 어떻게 재현에게 계속 이메일을 보냈던 걸까요?
과연 아내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자신의 기억으로 설계된 세계 〈욘더〉.
과연 그들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까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놀라운 연출력과 각본.
드라마를 본 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게 만드는 드라마.
추운 겨울,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 드라마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억과 사랑의 놀라운 하모니.
드라마 “욘더”입니다.
“욘더”에 대한 관전 포인트 하나!
1. 가까운 미래에 대한 설득력있는 묘사들
키보드까지 탑재된 일체형 노트북,
환자 목에 장착된 스피커,
사진, 동영상을 저장시켜주는 추모사이트와 추모비,
IoT의 실생활, 자동차 자동주행까지
명함을 주고받는 것도 이제는 스마트폰끼리 터치 한번이면 끝나는 세상이 곧 옵니다.
뇌 속에 있는 기억을 물리적으로 따로 추출해 저장하는 기술이 발전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드라마 [욘더]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묘사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단순히 자막으로 2032년으로 쓰고 끝내는 게 아니라
정말 가까운 미래에 벌어진 현실적인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영상에 담고 있어요.
제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기기는 바로 신체 스캐너였어요.
여러분, X레이, CT스캔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옵니다.
전자기기 하나면 바로 신체를 스캔할 수 있어요.
정말 방사능 염려 없이 신체 기관, 장기들을 스캔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런 최첨단 기술이 없이는 애초에 이 드라마는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도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일상을 잠시 보여준 적이 있었죠.
단순히 한 시나리오 작가가 100% 상상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미래학자들을 불러모아 조사하고서 그 조사한 정보들을 토대로 만든 미래였습니다.
드론으로 배달하는 시대.
거대한 메타버스가 도래해 사람들에게 제 2의 인생을 선사하는 시대.
그야말로 현실에 근거한 그럴듯한 미래의 모습이었죠.
이 드라마 [욘더]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2030년대에는 정말 저런 것들이 실현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좀 더 과장을 보태자면 어쩌면 더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지 모르겠어요.
과학 기술의 최첨단을 엿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 드라마가 또 흥미로운 점은
가까운 미래를 예상한다고 해서 단순히 과학기술의 변화만 다루지 않습니다.
법적인 변화도 보여주고 있는데요.
바로 [안락사] Euthanasia가 그 변화 중 하나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안락사]라는 장치적 제도가 먼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죽지 않아도 욘더에 갈 수 있다면 아마 대혼란이 찾아올 겁니다.
뇌 속에 존재하는 기억이 사람의 정체성을 대변할 경우, 결국 욘더로 가는 건, 육체를 포기하고 욘더를 가야하기 때문에 안락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 욘더는 죽은 사람들만 갈 수 있다는 점이 안락사가 필요한 이유가 됩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여전히 소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 정서가 안락사를 반대하기 때문이고요, 생명에 관한 법은 언제나 보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락사는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안락사를 동의하는 게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인식이 점점 안락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불법이었지만 현재는 합법으로 인정되는 다른 사례들을 보세요.
예를 들어, 한국에서 길거리에 CCTV 설치하는 것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는지 아시나요?
개인 자유 침해라는 이유로 CCTV를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1984] 소설 속에 존재하는 빅브라더의 재림이 아니냐 우려가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 CCTV가 온 거리에 설치되고 나서 사람들이 그런 걱정을 하나요?
오히려 사각지대에 있던 범죄들이 해결되었다고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통념은 점차 고지식하다 여겨지고 새로운 도덕이나 윤리가 다음 세대의 기준으로 자리 잡습니다.
지금 당장은 몰라요. 하지만 점차 사람의 인식은 바뀔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안락사”만을 미래의 변화로 다루었지만 아마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미래의 모습은 우리가 현재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겁니다.
지금은 말도 안된다 생각하는 윤리의식이 10년 후에는 당연하게 바뀔 거라는 말이죠.
90년대 윤리가 지금의 윤리와 많이 다른 것처럼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윤리의 인식변화도 엄청나게 빠르게 변할 겁니다.
제가 드라마 [욘더]를 매력적으로 본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대한 묘사를 아주 구체적이고도 설득력있게 해냈습니다.
각본에 정말 많은 신경을 썼다고 생각이 드네요.
가까운 미래를 보고 싶다면 드라마 [욘더]를 보시기 바랍니다.
드라마 [욘더] 입니다.
2. 인간 그리고 행복
자,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들어갑니다.
그러니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꼭 드라마를 다 보신 후 관전 포인트를 들어주세요!
From now on, spoiler alert!
[욘더]는 아주 철학적인 드라마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아주 무난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보통 로맨스 드라마와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철학에서 말하는 “인식론”이 이 드라마의 핵심인데요.
영어로는 “epistemology”라고 하는데요.
인간의 인식을 철학적으로 다룬 분야입니다.
과연 인간이 인식하는 과정이 어디까지 진실인가에 대해 옛날부터 아주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철학을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습니다.
인식론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드라마의 장치가 꽤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 이름부터가 재밌죠?
남자 주인공은 이름이 ‘재현’입니다.
거꾸로 읽으면 “현재”가 됩니다.
재현이라는 캐릭터는 현재를 사는, 현재 시공간에 사는 사람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주인공 이름은 차이후.
차이후라는 캐릭터가 인터넷 상에서 안락사모임커뮤니티에 글을 남길 때가 있었죠. 그 때 이후의 아이디 보셨나요?
“aftercha” 라고 썼는데요.
한국어로 “이후”라는 단어는 after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인데요.
흥미로운 점은 보통 사후세계를 영어로 말할 때 After life라고 합니다.
딱 여주인공의 이름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주인공은 바로 현재 이후의 세계. 죽음에 존재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이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독은 이렇게 이름으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위치를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 영화는 상당히 불교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불교철학에서 보면 인간의 존재라는 것은 다섯가지로 나뉩니다.
마치 햄버거가 번, 패티, 양상추, 토마토, 치즈로 구성된 것처럼 말이죠.
햄버거를 정의할 수 있는 재료를 우리가 딱 집어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햄버거는 그냥 빵과 재료들이 포개어진 음식이니까요.
불교에서는 인간을 '오온'이라 부릅니다.
그 재료는 육체적인 색, 느끼는 수, 생각하는 상, 의지가 담긴 행, 분별하고 의식하는 마음 식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오온이라는 것이요, 한데 모여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은 딱히 인간이라고 할 실체는 없습니다.
인간이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 뿐이죠.
만약 우리가 햄버거라는 것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고통이 시작되는 거죠.
왜냐하면 햄버거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기 시작하면 고통이 시작되는 겁니다.
인간의 뇌가 인간을 정의하는 것도 아니고, 몸이 인간을 정의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욘더]라는 세계를 한 번 살펴볼까요?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을 한 가상 공간에 모아 “천국”이라고 하는데,
불교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 [욘더]라는 세계는 애초에 불가능한 곳입니다.
[욘더]를 만든 닥터케이는 인간의 기억이라는 한 부분도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재현은 [욘더]의 세계를 미미에게 듣고는 바로 반박합니다.
“그거 가짜잖아”
인간의 기억만으로는 절대 인간이라 칭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는 결코 아내에 대한 기억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내의 뒷모습, 아내의 향기, 아내의 피부 등
아내의 기억이야말로 아내의 정수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애써 진실을 외면한다는 것이라고 재현은 알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기억과 행복에 관해 드라마가 다룬 핵심주제가 있었죠.
무한한 시간입니다.
욘더로 미리 온 아내 이후는 며칠 후 실제 찾아온 남편으로 인해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사랑하는 아이의 키가 자라지 않자
당황해하며 급격한 공포감을 느낍니다.
아이가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저주나 다름없었습니다.
재현과 이후는 무한의 시간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둘 모두 욘더를 떠나기로 결단합니다.
이 또한 불교적이라고 볼 수 있죠?
불교의 윤회가 인간에게 왜 고통인지 알려주는 단적인 예가 됩니다.
“욘더”는 영원히 성장하지 않고 그대로 머뭅니다.
따라서 그것은 시간이 주는 행복을 절대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욘더에서는 함께 늙어가는 행복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아이가 커 가는 것을 보는 행복을 느끼지 못 합니다.
운좋게 욘더에서 벗어난 재현은 욘더 관리자인 세이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이 없는 세상은 천국이 아니예요.”
이렇게 드라마 [욘더]는 인간과 행복에 관해 독특한 시각으로 아주 세련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욘더의 마지막 대사를 읽으면서 관전 포인트를 마치도록 할게요.
“아름다운 기억이 소중한 것은 그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 [욘더]입니다.
3. 무엇을 알려주고 싶었을까?
[욘더]의 제작과정을 그린 코멘터리 영상을 봤는데요.
그 영상에서 이준익 감독이 관객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도 아주 세밀하게 의도적으로 만들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근미래를 보여주는 문화와 물건들 즉 근미래 문물들을 보여주는 단서로 여러가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CGI를 화려하게 해 버리면 관객들이 내용에 몰입을 못할 것 같고, 너무 오늘날 문물처럼 만들면 근미래 설정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 중간을 어떻게 다룰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드라마에서 “세리”라고 했던 물건 기억하시나요?
IoT 기계였는데요.
이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만 수개월이 걸렸다고 하네요.
어떻게 하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할까 말이죠.
티비 모니터도 아예 투명유리로 바꾸고, 컴퓨터, 심지어 핸드폰까지 투명유리로 바꿔서 디자인을 아주 미래지향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현재보다 진화했다는 것을 미세하게 표현해 낸 제작진들 참 대단하다 말씀드리고 싶네요.
닥터 케이와 장진호 박사를 연기했던 정진영 배우는 닥터 케이가 일종의 디지털 교주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다고 합니다.
결국 아무리 과학을 덧입혔다 하더라도 그것을 설득하는 방식은 한 종교의 설교자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면요 연기자들이 그냥 대본이 있는대로 연기한 것 같지만 이렇게 치밀하게 연구하고 나만의 정체성을 캐릭터에 심어내는 작업이 대단한 것 같아요.
이준인 감독은 끝으로 이런 한 마디를 던집니다.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처럼 죽음을 한번 생각해봄으로써 삶이 더 선명해진다.“
이번 드라마는 정말 우리의 죽음을 드라마로 보면서 현재의 삶을 다시 한번 곱씹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올해 봤던 드라마 중 가장 철학적이면서도 오래 생각했던 드라마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꼭 한번 이 드라마를 통해 여러분의 삶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보고 삶을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
드라마 [욘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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