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으니 남긴다

돌아오거나 그곳에 남거나 [조명가게]

거니gunny 2024. 12. 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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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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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가게 ★ ★ ★ ☆ (3.5 / 5)

미스테리를 이용해 관객의 감정을 극과 극으로 치닫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웹툰을 이렇게 드라마로 구현해 낸다는 게 쉬운 게 아닌데 잘 구현해 낸 것 같아서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추운 겨울에 오싹함과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1. 연출 김희원

 

무엇보다도 연출을 배우 김희원이 맡았다는 것에 놀랍다.

첫 연출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예전에 김윤석 배우가 연출한 영화 "미성년"을 평가할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연기자가 연출을 맡았을 때 나오는 장점들을 다 가진 작품"이라고 말이다.

이번 드라마 "조명가게" 역시 배우가 연출을 맡았을 때 나오는 장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유튜브에 있는 "조명가게" 메이킹 필름을 본 적이 있는데,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https://youtu.be/N4swNNBP4ww?si=S3GWv87y6dvWaOqW

 

마치 세공을 하듯 장인정신으로 하나하나 섬세하게 가이드한다.

 

2. 배려있는 영상미

 

강풀 작가는 일찌기 이 작품의 장르를 "미스테리심리썰렁물"이라고 분류했다. 

드라마를 연출한 김희원 감독도 그 장르에 맞게 미스테리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잘 만들어냈다.

하지만 오로지 미스테리한 공포감만 전달했던 드라마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점점 커브를 돈다.

 

베일에 싸였던 의문들이 풀리자 공포 속에 숨어있던 한국적인 반전감동이 몰려온다.

혹시라도 이해하거나 따라오지 못한 시청자들을 위해 영상까지 변화시킴으로써 친절하게 안내한다.

", 여기서부터는 공포물이 아니라 감동 반전물입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초반에 등장한 조명가게는 화려한 조명들로 눈이 호강한다.

밝은 조명들이 가게 전체를 가득 메우면서 시청자들은 시각적으로 매혹된다.

정반대로 조명가게를 벗어난 골목길은 그야말로 어둡고 축축한 공포, 미스테리, 오싹 그 자체다.

시청자는 조명가게로 달려오는 여학생 주현주(신은수) 양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결국 드라마는 조명가게를 "피난처" 또는 "어둠에 대항하는 빛"으로 만들고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7화부터 등장하는 조명가게는 단순히 밝은 조명 가게가 아니게 된다.

 

조명가게 주인인 정원영(주지훈)은 대사를 통해 이 곳이 생과 사를 가르는 "사후세계"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방문자들은 더이상 조명가게를 단순한 "피난처"라고 간주하지 않고 "이곳"에서 자신의 빛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이때 조명가게를 잘 보면, 흑백처리가 된다. 그리고 유독 빛나는 조명 하나를 컬러풀하게 입힘으로써

지금 시청자가 집중해야 할 주제가 무엇인지 배려있게 유도한다.

이외에도 빛과 어둠을 극단적으로 대조시킨 초반 드라마 연출과는 다르게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의 갈림길로 화제를 돌린다.

 

3. 이것이 한국식 복선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불현듯 영화 "헬로우 고스트"가 생각났다.

마지막 15을 위한 복선을 위해 쌩뚱맞는 코미디물이라는 오해를 받았던 비운의 작품이다.

드라마 "조명가게" 역시 코미디 대신 공포를 드라마 초반에 집어 넣으면서 자칫 오해받기 쉬운 작품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주변에서 이 드라마를 공포물인 줄 알고 포기한 사람들이 몇몇 발생했다.)

 

그러나 이 복선을 조금만 참고 본다면 물밀듯 밀려오는 반전의 감격을 누릴 수 있다.

처녀귀신 같이 생긴 지영(설현)는 왜 버스 앞에서 그렇게 하염없이 앉아 있었는지.

왜 엄마(이정은)는 딸 현주(신은수)에게 전구를 그렇게 매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는지.

수수께끼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시원함과 동시에 감동이 밀려온다. 

바로 이 지점이 다른 나라 작품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한국적인 반전과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낯선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정말 맛있는 보말 칼국수였던 느낌이라고나 할까.

웹툰에서 느꼈던 반전 감동을 드라마 역시 선사하려고 노력한 티가 났다.

 

4. CG 공포는 여전히 숙제

많이 아쉽다.

요새 하도 많은 고퀄의 CG가 사용돼서 그런지 웬만한 CG로는 성이 안 찬다. 

팔척 귀신이 등장할 때는 너무 CG 티가 많이 나서 공포를 느끼기도 전에 어색함이 보였다.

갑자기 화재 발생 시 튀어나오는 귀신도 마찬가지.

CG로 공포를 표현해 내는 것은 아직까지는 쉬운 것이 아닌 듯 싶다. 아쉬움이 남는다.

 

5. 8화로는 채울 수 없었던 미결들

메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원래 없던 세계를 창조해낸 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사후세계를 조명가게라는 컨셉으로 시작한 것은 신선하다.

화려한 조명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비롭고 매료되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 설정이 오히려 빈 틈을 너무 많이 만들지 않았나 싶다.

 

조명가게를 관리하는 정원영(주지훈)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관리자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은 뒤에 나오는 형사 양성식(배성우)도 마찬가지다)

정원영은 그렇다면 이제 사람이 아닌 것인가?

그의 딸은 어떻게 조명가게에 머무를 수 있었는가?

여학생 현주의 친구들, 선생님과 여고 학생들은 누구인가?

교실 속 사물함 이름들이 유산당한 아이들의 이름이었다면

교실에서 보여준 학생들은 모두 유산당한 아이들이어야 하지 않은가?

마지막 다시 등장한 하복을 입은 여학생은 또 누구인가?

 

좋게 말하면 시즌2를 위한 떡밥이라고 하겠지만 너무 많은 미결 떡밥들이 남아있다.

 

강풀 세계관도 연결 고리만 보여줄 뿐, 같이 전개되진 않는다.

 

사족을 더하자면, "조명가게" 작품은 "콘크리트 유니버스"와 관련이 없다.

다시 말해, "몸값"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등장했던 대지진은 이 조명가게 이야기와 연관성이 없다. 

조명가게 주인인 정원영(주지훈)이 아파트 붕괴의 여파로 건물 속 잔해에 깔린 것은 1970년 실제 사고였던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와 연관성이 짙고 대지진과는 들어맞지 않는다.

 

아무리 시즌2를 염두에 둔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너무 방대하게 남아있어서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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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분들도 코마 끝나면 죽거나 살거나..."

"아니. 여기선 그런 말 하지마. 돌아오거나 그곳에 남거나."

7화 중환자실 병동에서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곧이 곧대로 말하지 않는다.

영어로도 "He died"라는 말 대신 "He didn't make it. He passed away."

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죽음"자체가 주는 무거움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조명가게를 보면서 '한국적'이라고 느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대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접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혼자 외로이 죽는 것을 측은히 여겨 짜장면을 만들어 주는 요리사.

본인도 사고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에 탑승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사과를 하는 버스 기사.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고맥락 사회" 한국에서 생각하는 죽음은 이런 것이 아닐까?

 

연말을 앞두고 참 뜻깊은 드라마를 본 것 같다.

 

요약

1. 김희원 배우의 아주 멋진 첫 연출작!

2. 관객에게 배려있는 영상미

3. 이것이 한국식 복선이다 

4. CG 공포는 여전히 숙제

5. 8화로는 채울 수 없었던 미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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