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가 웃는 순간]
오컬트 물은 즐기지 않는 편이다.
주문 마법 피의 제사 등...
적어도 나에겐 조악한 소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내가 팬이라고 자처하는 찬호께이가 그 소재로 소설을 만들었다!
과연 나는 이 책을 좋아할 수 있을까?
@@스포 주의!!@@
딱 찬호께이식 호러 미스테리 소설이다. 무심코 지나갔던 묘사들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통쾌함을 느낀다.
떡밥 회수는 기본이다. 찬호께이의 소설은 언제나 읽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책을 쥐약처럼 읽는 나조차도 단숨에 사흘 만에 559페이지를 읽게 만든다. 대단한 재미가 아니고서는 이럴 수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추리소설보다는 공포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중간중간 흠칫 놀라는 부분이 있어 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모든 이야기가 잘 꿰어져 나왔다는 것이고 납득할만한 엔딩이라는 점이다.
--찬호께이가 만드는 공포 분위기는 다르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처음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볼 수 없는 기괴한 화재현장이다.
처음 이 장면을 보고선 찬호께이의 작품이라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사회 추리의 대가 찬호께이가 이런 오컬트물을 좋아한단 말이야??'
오컬트에서 빠지지 않는 염소, 주문 등 클리셰가 등장하니 무언가 기시감이 들었다.
그래서 책 띠지에서도 “뻔하다”라는 표현을 쓴 모양이다.
하지만 찬호께이는 이 클리셰를 멋지게 소화시켰고, 거기에 기숙사 괴담까지 더해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는 스토리로 몰아갔다.
한 가지 선제조건이 있다면, 풍수지리를 조금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
물론 나처럼 그런 풍수지리나 기타 종교를 '1'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소설 속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이해하려면 그런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캐릭터 중 위키나 샤오완이 알려주기는 하지만 미리 알고 있었다면 더 몰입감 있게 볼 수 있었으리라.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책 앞에 지도가 놓여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기숙사를 이해하려면 역시나 이 지도가 필수다.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앞에 있는 기숙사 지도를 계속 뒤적거리며 읽어야만 했다. 약간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훨씬 큰 도움이 됐다.
--내가 찬호께이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웅이 있기 때문이다.
13.67에서는 관전둬 라는 형사가, 망내인에서는 천재 해커가 영웅에 해당했다. 하지만 이번 염소가 웃는 순간은 딱히 그런 영웅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찬호께이 소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속 시원하고 통쾌한 해결을 만날 수 없었다.
위키라는 주인공 친구가 영웅일 줄 알았는데 글쎄... 마지막에 해결하는 부분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런지 그리 임팩트 있지는 않았다. 물론 괜히 위키가 앞부분에서 위화감을 조성한 게 아니었다. '폴터가이스트'라는 게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을 위키가 알려줘서 정말 시원했던 건 인정.
(이 책을 다 보고 나서야 왜 위키와 즈메이는 맨 처음 지하실에 가지 않았던 걸까? 알게 된다.)
--역시 찬호께이!
앞으로 찬호께이의 소설은 어떤 장르라도 읽을 생각이다. 공포소설까지 이렇게 재미있게 봤는데 다른 장르가 뭐가 대수겠는가! 그래도! 하루빨리 차기 추리소설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13.67]처럼 사회 추리소설로요:)
—-
P397
상황이 좋아지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데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최악의 결과를 알고 있으니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유령도 아니고 자신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인간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걸 제일 두려워한다. 한마디로 미지를 가장 두려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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