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으니 남긴다

말도 안되는 입양스토리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케이티 데이비스

거니gunny 2020. 1. 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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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보다 어리지만, 훨씬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 그녀의 삶을 책으로 엿보면서 정말 한번 뿐인 인생에서 어떤 선택이 나에게 더 맞는지 생각해보는 책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 그녀는 나와 같은 성정을 갖지않은, 사상 자체가 나랑 다른 사람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녀도 사역을 나가기 전에 수많은 갈등을 했다. 아니, 사역을 하면서도 정말 많은 갈등을 하게된다.

 

  아빠와 함께 우간다로 떠나던 날 아침, 고급 주택가에 있는 우리 집의 더없이 푹신한 침대에서 눈을 떴던 기억이 난다. 내가 살던 동네는 귀부인들이 비싼 돈을 들여 몸과 집을 치장하는 곳이고, 동아프리카에 갈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 사치스러운 동네에서 땅콩버터 토스트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자마자 친구들이 환송회를 해 주기 위해 우르르 몰려왔다. 친구들은 다들 흐느끼고 있었다. 당시 나는 단짝 친구들과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 친구와 내 남동생에게 거의 1년 내내 작별을 고하느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p28)

케이티도 얼마나 갈등했을까. 그것도 가장 혈기왕성할때... 친구들이 좋고, 침대와 깨끗한 집을 놔둔다는건 대단한 결심이다.

그녀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닌가.

내 자식(입양아)이 아프면 다급해지고 심장이 벌렁거린다.

이곳(우간다)에 의술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더욱 한스럽고, 방법을 찾아 인터넷을 더 분주하게 뒤지게 된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들의 손을 꽤 많이 붙잡아 보았고,

그때마다 끔찍하고 슬펐지만 솔직히 우리 딸이 죽음을 눈앞에 두었다면 슬픈 정도가 아니라 아예 까무러쳤을 것이다.

창피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p260)

 

그녀도 갈등했다. 자기자식이 아니라서 슬픈정도라고 여기는 자신...

자기자식이 아닌 한계를 느꼈다고..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게 가능하겠냐마는 그녀는 기도했고, 계속 그녀의 사역을 해나갔다.

 

그녀의 사역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그저 고아원에서 아이들에게 잘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그녀의 전부를 바쳐서 사역을 한다.

21살이 저지르는? 일이 끝이없다. 우간다에 간것도 모자라 입양이라니;;;;

입양이라는게, 까딱하다가는 아이들에게 제 2의 상처를 줄 수도 있을텐데... 그래도 그녀는 감행했고, 지금까지 아주 잘하고 있다.

아마 하나님을 이런 그녀의 진취적인 마음때문에 어린시기에 그녀를 우간다로 보내 사용하셨던 것 같다.

 

이런 책을 보면 정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 같다. 이 땅에서 하나님은 그저 지켜만 보시는게 아니라, 정말 일하신다고..

하지만 그 일이 바로 내 일이고, 그 사역의 문제가 내 문제였다면 과연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회계사를 준비하던 친한 친구가 아마지마(케이티의 단체이름)의 재정 상태를 보고싶다고 했다. ...중략...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간 사역을 유지할 수 없으니 2009년에는 (단체)규모를 줄여서 후원을 받는 44명만 학교에 보내라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106명의 아이들에게 학교를 그만 다니라고 말하라고? 더 이상 먹여 줄 수도 약을 발라 줄 수도 없다고 말하라고?'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중략... 그날부터 하나님의 계속된 공급하심을 위해 며칠간 금식하며 눈물을 뿌려 기도했다. 마침내 응답이 왔다. 불과 몇 주 사이에 13명의 아이가 후원자를 얻었고 세 건의 모금 파티가 잡혔다. (p157,158)

 

재정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 그리고 이어지는 기부와 모금들...

여기서 나는 두 가지를 본다.

첫째, 그들이 가는 사역에 재정이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둘째, 재정이 기적적으로 모아짐에 따라 그들은 이 사역이 하나님의 사역이라 더 믿게 되었다.

난 결코 돈을 무시할 수 없다. 워낙 안전한 걸 좋아하다보니 차선책이 없이 뛰어드는 걸 견딜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내 성격이 정말 하나님앞에서는 교만한것 같다. 하나님보단 현실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보단 지금 내 수중에 있는 돈을 더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책임한 짓은 하기 싫다. 사실, 케이티도 어찌보면 정말 무책임하다. 누구는 운영축소를 하고싶어서 하나?

자칫 빚 때문에 운영단체가 와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후원을 둔 44명의 어린아이조차 위험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음... 결과론적으로는 그녀의 믿음이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내게는 아직도 그런 과감함이 없다.

 

 

이 책은 그저 우간다라는 나라에서 백인여성이 천사처럼 삶을 살았다는 동화가 아니다.

이 책은 나에게 말하고 있고, 여전히 편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알람을 켜주고 있다.

이제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P.S.: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나빠질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충격은 상쇄하고, 자기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이건 나에게 말씀하시는 계시야. 내가 이러고 있을 수만 없지.'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류의 책들이 매해마다 나오게 되면, '올해도 이런 책이 나왔구나. 전에 봤던 책이랑 색이 비슷하겠지.'라고 면역이 된다.

 

제발 이런 불상사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한때 누렸던 안락한 삶보다는 누군가의 삶을 좀 더 낫게 만드는 일이 훨씬 더 기분 좋았다. 이곳에 오래 머물수록 불편은 잠시뿐이고 만족감은 훨씬 더 깊고도 오래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45)

만약 케이티의 고백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편안한 삶을 누리는 우리는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맞고, 이것도 맞을 수 없다.

하지만 모든 크리스천이 해외로 나가서 케이티처럼 봉사활동을 해야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외에서 힘들고, 고난받는 크리스천이 있는 동안, 국내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일이 훨씬 쉽고 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단지, 국내에서는 어떻게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그 청년 바보의사]에 나오는 안수현씨처럼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삶을 보면, 차라리 해외에서 속편히 하나님사역하는게 낫다고 할 정도로 국내에서 치열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았다.

그저 주일날 교회나가고, 성가대하고, 술담배 안하는게 크리스천의 최선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게 한다.

고뇌하고 고민하다가도 주님의 길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세상과 충분히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주위 동료들에게 욕먹는 짓을 굳이 하는 그였다.

눈물날정도로 억울할 테지만, 그는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실거라 여기고 행복해했다.

 

 I am in awe of you.

정말 이 고백이 나오려면 다음과 같은 구절을 "확실히" 실재로 여겨야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10:28

 

안전한 삶은 그분이 원하는 삶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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