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으니 남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Night train to lisbon)에서 얘기하는 "영원성"에 대하여.

거니gunny 2020. 1. 2.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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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많은 철학적 담론들이 오고갔지만,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는 내용은 "영원성"이었다. 사실, 이 주제는 이야기 전개와 별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카톨릭의 엄격한 규율을 벗어나고자하는, 자유를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여기고 살아갔던 주인공이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로 "영원성"을 걸고 넘어졌기에 주인공에게는 의미있는 주제라 생각한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아마데우 프라도는 자기가 수학했던 학교에서 졸업연설을 하게된다. 거기서 그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젊은 청년상을 보여주었다. 카톨릭 학교에서 다소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킨 그는 이런 연설을 하게 된다.

 

 

앞부분 생략.. 

"...하지만 제가 살고 싶어하지 않는 또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독립적인 사색이 경멸당하고, 마치 죄인 양 비난 당하는 세계입니다.

독재자, 압제자, 암살자로부터 사랑을 강요 받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조리한 것은 이 사람들을 용서하고 심지어 사랑하도록 강요하는 종교입니다.

이게 바로 성경을 그냥 옆에 둘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런 모든 것들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종교는 하나님보다 신성한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낮이나 밤이나 주님이 항상 어디든지 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행동과 생각들을 다 알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밀없는 사람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직 혼자 간직할 수 있는 생각과 소망들이 없다면요?

하나님은 고려하지 않는 건가요?

그의 억제 되지 않는 호기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훔쳐간다는 것을?

영원해야 할 영혼을요? 하지만 누가 진지하게 영생을 원하겠습니까?

오늘 날, 이번 달, 금년에 일어나는 일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면 얼마나 지루할까요?

아무것도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있는 누구도 영원히 산다는게 어떤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제가 확신시켜드릴 수 있는 단 한가지 입니다.

이 끝없는 영생의 천국은 지옥이 돼버릴 겁니다.

죽음, 오직 죽음뿐입니다.

매 순간에 아름다움과 공포를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시간이 살아있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모르실까요? 왜 참을 수 없이 적막할 뿐인 무한함으로 우리를 협박하실까요?

 

  그의 제법 소신있는 연설은 몇몇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첫째, "여기에 있는 누구도 영원히 산다는게 어떤지 모릅니다. "

인간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영원함"을 아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Infinity)"에 대해서는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심지어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조차 없다.

때문에 "영원함"이 주는 무한의 공포는 확실히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다.

 따라서 주인공이 얘기한 것 처럼, "영원"을 가지고 인간을 협박(?)하는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진다.

 

둘째,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시간이 살아있게 됩니다. "

이 말을 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불교의 윤회사상을 거부함을 표명한다. 영원성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 지루함을 벗어나고자, 불교는 "해탈"을 해야한다. 하지만 그는 윤회사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죽음으로 영원을 배척한다.

죽음은 인간을 유한하게 하며, 그럼으로써 시간을 "의미있게" 만든다. 따라서 그에게는 80년의 생만이 유일한 의미요, 가치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필자는 이 두 가지 의견을 공감하지만, 그것이 가진 의문점을 주인공에게 또한 말하고 싶다.

 

'죽음은 의미있고, 영원은 무의미하다'는 얘기를 우리 인간 중 어느 누가 할 수 있을까?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도 없고,

영원을 체험한 사람도 없는데, 어째서 주인공은 죽음이라는 것을 의미있게 보고, 영원을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일까?

 

죽음은 우리 주변에서 목격할 수는 있다. 그것은 "목격"이다.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죽음 또한 영원처럼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다.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시간이 한계가 있고, 시간을 가치있게 만든다고 하는 주장의 베이스에는 "죽음은 끝"이라는 전제가 인정되어야하며, 죽음 이후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죽음 이후를 경험한 사람이 이 세상에 없고, 또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된 주장이기에, 그의 주장은 그것을 받쳐줄만한 연역적 전제가 없게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실감있는 스토리에 쉽게 감정을 이입하여 보게되었다.

 

P.S.: "영원성"에 대하여는 고대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언급한 바 있으나(이데아), 이 영원함은 영원함 그 자체만을 얘기하지,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천국과 지옥의 영원함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따라서 필자는 플라톤이 얘기하는 이데아를 연결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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