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으니 남긴다

양심도 성장한다 [언노운 걸(La Fille inconnue)]

거니gunny 2020. 1. 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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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언노운 걸] 제니 다방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나의 사소한 회피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다.

그 후 나의 반응은 어떠해야 할까?

 

그녀는 충분히 그때 상황을 변호할 수 있었다.

병원 벨소리가 울린 것은 진료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난 뒤였고, 그나마 울린 횟수는 한 번이었다.

벨소리가 한 번 울렸다는 것은 긴급환자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벨소리가 여러 번 울렸다면 긴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그녀도 예상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진료시간이 한참 뒤였기 때문에 의사는 그 문을 열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도움 부재로 인해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의사 제니는 인생에 있어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여기까지는 영화나 우리 삶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누구라도 제니 다방처럼 그럴 수 있고, 그런 사건을 겪을 수 있다.

 

영화는 그 이후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죄책감을 정면돌파했다. 이미 떠나버린 소녀였지만 그 소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았고 최선을 다해 그녀를 위한 행동을 펼쳐나갔다.

 

죽임을 당한 여자아이의 이름만이라도 알고 싶었던 제니는 자신의 미래가 달린 커리어를 포기한다. 그리고 은퇴하시는 의사의 뒤를 이어 계속 그 병원에 근무하기로 결심한다. 아예 병원에 살림까지 차리고 생활한다.

 

일일이 사람들을 찾아가 소녀의 이름을 물어본다. 가정진료를 하면서도 일일이 물어보고, 피씨방까지 가서 소녀의 이름을 물어본다.

 

그렇게 닥치는대로 물으니 시련도 있었다. 그녀는 벌집을 건드리듯 소녀의 매춘행위를 조장했던 패거리들에게 살해의 위협을 당한다. 그러나 겁먹은 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 소녀의 행방을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이런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결국 영화는 그녀의 소원을 이뤄준다. (구하지 않은 것까지 얻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겠지?)

그녀의 행동은 목격자 브라이언을 실토하게 만들었고,

성매매에 가담했던 자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일으켰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의 끊임없는 추격덕분에 소녀를 살인으로 몰고 갔던 자를 자수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소녀의 친언니까지 양심선언을 한다.

이런 여파는 그녀의 용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우후죽순 일어났다. 제니는 소녀의 이름을 얻었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했다.

 

 

 

출처: 영화[언노운 걸] 줄리앙과 제니

이 영화는 제니 말고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리 비중 있게 나오지 않지만 인턴 줄리앙이 영화 속에서 고민했던 것은 오히려 우리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기억에 선하게 남는다.

과거 아버지에게 입은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턴 줄리앙은 돌연 의사의 길을 포기한다.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결국 자기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고향으로 돌아간다. 우리 모두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를 하나 이상 갖고 있기에 그가 고민하는 고민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제니처럼 그 문제를 회피하기보단 다시 일어나서 직접 부딪치는 것으로 줄리앙의 이야기는 행복하게 끝을 맺는다.

제니처럼, 줄리앙처럼 우리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것을 정직하게 말하기도, 부딪히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영화 속 그들은 적어도 그 문제들을 피해 가지 않았다. 그 모습은 미련한 모습이 아니라 용기 있는 모습이었고, 과거를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이었다.

 

 

 

 

다르덴 형제 (출처: flickr)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다르덴 형제 감독의 작품이 왜 평론가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흔한 사운드도 없고, 헐리우드 영화에 비해 나은 것이 전혀 없어 보였다. 괜히 평론가들이 으스대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르덴 형제의 작품을 하나 둘 보면서 그들의 평가가 옳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정적이고,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몰입감이 있었고, 마지막 장면을 볼 때는 좋은 영화를 봤다는 뿌듯함까지 생긴다.

우리 바로 옆 동네에서 일어나는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깊이는 어느 영화보다 깊고 진하다. (개인적으로 해피엔딩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름의 해피엔딩을 보는 기쁨도 있는 듯하다.)

 

대신, 다른 부수적인 장치들이 없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배우들의 부담감은 더 할 것 같다.

최대한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것이 결실을 잘 맺은 것 같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은 이주민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다. 더욱이 이주민들의 불법 체류로 인해 파생되는 불법 성매매까지 그 문제는 심각해져만 간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정부의 고민이 크겠지만, 이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하나의 바람직한 답변을 영화가 제시한 것 같아서 기쁘다.

 

제니의 선택으로 그녀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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