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영화[그랜 토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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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우리에게 팝콘보다 가벼운 여흥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묵직하고 감동적인 여운을 주기도 한다.
삶과 죽음, 가족과 사랑을 가장 영화스럽게 표현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영화 [그랜 토리노]다.
주인공 월터 코왈스키는 성당에서 장례식 설교하는 신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27살짜리 주제에 신부랍시고 신학교 교과서에서 배운듯한 멘트로 삶과 죽음을 설교한다.
월터가 듣기에는 너무도 가벼운, 모욕적인 설교였다.
복사기 같은 삶과 죽음에 대한 멘트는 어느 누구의 가슴에도 와닿지 않는다.
월터는 그런 말이 듣기 싫었다.
게다가 한국전쟁에 참가해 죽음을 바로 가까이서 "현장학습"으로 지켜본 주인공이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삶과 죽음"이 가진 의미를 보여준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그런 가르침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것을 보여주었고, 우리에게 귀감이 되었다.
큰 그림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어바웃 슈미트]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자기 가족에게서도 얻을 수 없었던 삶의 의미를 너무나 생뚱맞은 외부인에 의해 찾게 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무게를 따지자면 이 영화가 훨씬 더 무겁다. 왜냐하면 단순히 삶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까지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영화만이 가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멋쟁이다. 할리우드가 가지지 못한 중후한 모습을 그는 가지고 있다.
이번엔 츤데레 할아버지로 나왔다.
여담이지만, 픽업트럭을 탄 주인공 모습을 보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주인공 모습이 보였다.
그는 정말 멋있는 배우다. 베이스 톤의 목소리도 어쩜 그리 멋진지.
멋진 베이스 음성을 가진 배우로도 정평이 나 있는 짐 카비젤도 도저히 비교가 안될 만큼 멋진 할아버지 목소리였다.
이 영화의 유일한 옥에 티라면,... 몽 가족을 꼽을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몽족으로 나온 배우들 모두 연기력이 아쉽다.
가장 극적으로 몰입할 때 연기력이 발목을 잡는다. 조연 남자아이 타오 부터 시작해서 수 패밀리 모두 계속 카메라를 의식하는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몽족은 왜 계속 그들의 문화를 주장하는 걸까?
주인공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음식을 계속 갖고 오질 않나,
주인공이 싫다는데도 지 아들이 가문의 먹칠을 했다고해서 억지로 일을 시키질 않나.
그걸 또 안 받아주면 자기네들에게 모욕이라니...
이슬람이 유럽에서 하고 있는 행동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인정한다면, 그들도 미국의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그것을 마이너스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들의 그런 끈적끈적한 막무가내 "오지랖"이 그에게는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
이 남자의 삶은 "인자(人子)"의 냄새가 난다.
물론 욕도 하고, 시작이 그리 착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행동만큼은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명령했던 명령과 일치했다.
경찰이 해결해 주지 못하고, 몽 가족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문제를 끌어안고, 자신을 내어주는 모습은
어느 누가 봐도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2시간 동안 어떤 철학 책을 본 것보다 더 마음에 와닿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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