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으니 남긴다

희망이 무너져 내려도... [자전거를 탄 소년]

거니gunny 2020. 1. 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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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자전거를 탄 소년]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희망이 무너져 내려도 또 다른 희망을 잡아야 산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어른의 성숙을 말하는 영화라면,

이번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은 아이의 성숙을 말하는 영화다.

 

아버지가 시릴을 한 달 이상 보육원에 맡기자, 시릴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시릴은 더 이상 자기를 키울 수 없어 매정하게 버리려고 하는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더욱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시릴은 과연 어떻게 미래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주인공 시릴이 저런 지경에 이른 것은 1 차적으로 부모 때문이다.

그 부모의 영향 아래 좌충우돌하며 조금씩 자라나간다.

 

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어른들의 입바른 소리를 새겨듣는다. 그리고 상처받는다.

어른들이야 상처받아도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나름 건설적으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아이는 그게 상처인 줄도 모르고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경주마의 눈가리개처럼 시야가 좁아져서는 자기가 꾀한 대로 해결하려다가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시릴은 불쌍한 아이다.

눈앞에서 아버지에게 거절당하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커다란 상처일 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을 본다.

돈을 훔쳐서 아버지에게 갖다 주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고,

자기에게 사랑으로 베풀어준 이에게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결국에는 복수하려는 소년과 싸우지 않고, 묵묵히 숯을 들고 자전거를 탄 시릴로 변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시릴을 상상한다.

 

우리 모두 미용사 사만다가 될 수 있을까?

시릴은 자기 혈육도 아니요, 친척도 아니다. 선의로 자전거를 찾게 해준 게 전부인데, 시릴은 아버지를 찾겠다며 갑자기 자기 인생에 들어와서는 자기 삶을 몽땅 헤집고 다닌다.

끝내는 자기 팔에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나도 미용사 사만다처럼 아이를 다시 품을 수 있을까..?

 

흥미로운 상상을 해본다.

만약 이 영화가 현실이라고 치고, 짤막한 단신 기사가 떴다고 가정해본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13세 소년이 트렁크를 정리하는 남성과 아이를 야구 방망이로 치고 돈을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만약 네이버뉴스 헤드라인에 뜬다면, 우리는 그에게 관심 어린 눈빛으로 봐줄 수 있을까?

 

절제된 연출 속에서 오로지 클래식 하나만 나오는 영화를 봐서 신기할 따름이다.

(엔딩크레딧 보니까 베토벤 협주곡인듯하다.)

현란한 그래픽이나 사운드 같은, 어찌 보면 곁가지 일수 있는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카메라 영상 기법과 연출과 플롯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뚝심이 보인다.

 

[내일을 위한 시간]에도 출연한 파브리지오 롱기온은 이번 영화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다르덴 형제 영화에 빠지지 않는 감초 역할인가 보다.

 

개인적으로는 [내일을 위한 시간]이 훨씬 와닿았으나, 이 영화 또한 오래도록 회자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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