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으니 남긴다

미국의 민낯 [데어 윌 비 블러드]

거니gunny 2020. 1. 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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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데어 윌 비 블러드]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가족이란 무엇인가?

신앙이란 무엇인가?

 

무일푼으로 금을 캐면서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았던 다니엘 플레인뷰.

우연히 그는 석유를 발견하고 조금씩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폴 선데이라는 젊은 청년이 가져다 준 정보로 인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변하게 된다.

그를 이끌어준 정보가 결국 그를 해피엔딩으로 만들어낼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시기,

우리는 국사 책에서 갑오개혁이 일어나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서게 되는 시기라고 배운다.

하지만 저 멀리 태평양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금광을 캐거나 석유를 파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성행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20세기 초 미국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시사점이 있지 않나 싶다.

크게는 둘로 볼 수 있겠는데, 가족과 기독교이다.

출처: 영화[데어 윌 비 블러드]

 

영화는 이 사회가 가족 중심적인 사회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니엘은 항상 사업을 시작할 때, 아들을 앞세워서 설명을 한다. 이 사업은 단순히 돈을 목적으로 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런 호소는 실제로 영화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당시 미국이 얼마나 가족 중심적이었는가를 말해주는 단면일 것이다.

그리고 이복동생으로 위장해 그를 찾아온 헨리를 다니엘은 내쫓지 않고, 사업 파트너로서 비즈니스를 함께 하며 일하게 된다.

이처럼 이 영화는 그 사회가 얼마나 가족을 중시했는지 보여준다.

 

둘째로, 미국 사회가 기독교 중심 사회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나오는 제3계시(The third revelation)도 기독교의 한 교파인데 아마 오순절 계통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제1계시를 구약 하나님의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으로, 제2계시를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제3계시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개인에게 직접 계시하시는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교단이 "제3계시"로 설명하고 있다.)

이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는 종교적인 색채 또한 그 당시 사회를 설명하고 있는 중요한 단면적 요소이다.

미국 사람들이 초기 정착할 때 가장 먼저 교회를 지었다고 할 정도로 그들에게는 청교도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단면을 영화가 잘 보여준 것 같다.

(물론 어두운 면만 너무 많이 부각된 것 같지만 말이다.)

 

이제 영화는 중반부터 두 개의 큰 흐름인 가족과 기독교를 전면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가족이란 것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다니엘의 가족은 아들 H.W. 와 이복동생이다.

H.W.는 실제 친아들이 아니었지만 그를 아들처럼 키웠고 나중에 사업을 물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결혼 후에 자기 아버지 다니엘을 떠나려 한다.

이복동생이라고 주장했던 헨리도 결국엔 동생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그리고 결국 이 둘은 다니엘을 떠났으며 다니엘의 주변에는 고용인들 외엔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허탈함만이 남아있게 된 다니엘에게 가족이란 것의 허무함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이들은 애초부터 다니엘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다. 단지, 한 명은 다니엘이 아들로 삼은 것이고, 나머지 한 명은 다니엘을 속인 것이다. 그러나 그 동기가 어찌 됐든 그들은 가족으로 다니엘의 마음을 열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보기 좋게 그들은 다니엘을 떠나게 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다니엘을 떠난 것일까?

아니면 함께 할 운명이 애초에 아니었을까?

 

이 영화를 보는 기독교인으로서, 보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다.

너무 기독교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천이 팩트로서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의 밝은 면만 본다면, 우리 또한 한 쪽만 보는 사람들이 된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책을 통해 개신교와 자본주의는 함께 성장하는 것임을 설명한다.

노동을 성스러운 하나님의 소명으로 바라보는 것은 개신교의 핵심 중 하나다.

물론 영화에 등장한 폴 선데이(엘리 선데이)는 이것을 아전인수 격으로 남용하여 해석하지만,

그의 협상 시도 자체가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죄악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청부론"을 주장하는 신학이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중립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을까?

돈 버는 폴 선데이가 불편했던 것일까?

불편했던 장면은 따로 있다. 바로 축성식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다니엘에게 사고가 연달아 일어난 장면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말하려고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힘이 쫙 빠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몰입하고 봤기 때문이다.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보는 내내 고민하게 만든다. 다니엘의 인생을 과연 무엇으로 해석해야 할까라는 고민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작품이 인상 깊었던 적은 아마 처음이지 않나 싶다.

(예전 그의 연출작 [마스터]를 보긴 했으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력에 찬사를 보낸다.

주연 다니엘 플레인뷰를 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콧수염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잉글리쉬 배우이다.

폴 선데이와 일라이 선데이를 맡은 폴 다노는 정말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이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잘 소화하는 것 같다. 주연배우보다 오히려 이 폴 다노가 출연한 작품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너무 얄미울 정도로 목사 연기를 잘 해주었다.

 

미국을 지탱하는 어메리칸 드림은 어찌 보면 말 그대로 꿈에만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

다니엘의 인생을 보면서 우리가 행복을 찾기가 힘들듯이, 어디에도 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현실에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가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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