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으니 남긴다

상처는 딱지가 되고 [쓰리 빌보드]

거니gunny 2020. 1. 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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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쓰리 빌보드]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여파(aftermath)는 예측할 수 없지만 불을 지펴야만 했다.

충격을 겪는 사람들이 서서히 변화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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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을 좀 했다. "빌보드" 하니까 무슨 팝송 관련 영화인 줄 알았다;;;

여기서 “빌보드”는 길거리에 설치된 대형 광고판을 의미한다.

 

자신의 딸이 강간살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주인공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마을에 세워진 3개의 대형 광고판에 글을 남긴다.

"딸이 강간당하고 죽어가고 동안/ 윌로비 서장(우디 해럴슨)은 / 왜 체포하지 않았습니까?"

이 광고판으로 인해 마을은 다시 한 번 요동쳤고,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일어난다.

 

 

윌로비 서장(우디 해럴슨)과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 출처: 영화[쓰리 빌보드]

 

처음엔 여주인공과 윌로비가 사건을 해결하는 스릴러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러나 윌로비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어느새 영화는 사건 자체보다는 그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감정에 더 초점을 둔다.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에 이 영화만의 독특함이 있는 것 같다.

복수심으로 똘똘 뭉쳤던 어머니 밀드레드가 좌절하는 모습,

아무리 힘들어도 강하게 버틸 줄 알았던 윌로비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

촐싹대기만 하고 안하무인격으로 사람을 대하던 딕슨이 목숨 걸고 범인을 잡으려는 모습 등

영화는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위화감 없이 보여준다.

 

왜 이런 슬픔이 모두에게 주어졌을까...

영화 속 방송기자는 괜히 어머니인 밀드레드가 광고를 올려서 윌로비 서장에게 나쁜 일이 벌어졌다고 간접적으로 책임을 묻는다. 안타깝기만 하다. 그녀야말로 딸을 잃은 피해자다.

그녀의 행동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하기 마땅하지 비난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그럼 윌로비 서장 책임일까? 윌로비 서장에게 왜 사건 해결 안 하고 무책임하게 떠났냐고 비난해야 할까? 그도 병마와 싸우며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한 경찰이다. 오히려 그녀에게 광고비를 주면서 미안하다고, 힘내라고 말한다. 그 보다 이 사건이 진심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경찰도 없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건은 오리무중이다.

보통 헐리우드는 이쯤 되면 진범이 누구이고, 그를 체포하여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하지만 영화는 '뻔한'스토리로 가지 않았다. (이것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강점인 것 같다.)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딕슨(샘 록웰) 출처: 영화[쓰리 빌보드]

 

제일 놀랐던 건 딕슨(샘 록웰)의 변신이다.

가장 뺀질 대고, 감정적이며, 경찰이라는 신분만 믿고서는 마음대로 복수하고 활개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진심 어린 편지하나가 도착하자, 그 편지 하나로 사람이 180도 변한다.

그는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던 듯하다.(영화 마지막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고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눈물을 흘리며 광고주 레드 웰비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고작해야 편지 한 장인데.

그것이 사람을 이리도 변화 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성적으로 보면 그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의 변화된 모습을 인정한다.

사람은 진심을 만나면 변화된다. 가장 사고뭉치 일 줄 알았던 그가 사건의 핵심을 건드리는 경찰이 된 것을 통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이다.

 

그야말로 유명 배우들 총출동이다.

주인공 밀드레드 역을 맡은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처음 만나는 낯선 배우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충분히 관객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했단 얘기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윌로비 역을 맡은 우디 해럴슨은 어느 영화를 만나도 자연스럽다. 관록이 몸에 배어있다.

이 영화의 숨은 주인공 딕슨 역을 맡은 샘 록웰은 참 좋아하는 배우다. 예전 영화 [더 문]에서 연민이 가는 우주비행사로 최고의 연기를 펼쳐 주고 나서부터는 나도 모르게 정이 간다. 이번 영화에서 감정 변화 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참 멋지게 잘 소화했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축하!)

그 외 연기자들 또한 충실하게 영화를 빛내 주었다.

 

가족이 가장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아마 강간, 자살이 아닐까.

영화는 가장 끔찍할 수 있는 사건을 무던히 조용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조금은 색다르게 말해준다.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아픔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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