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으니 남긴다

욥이 영국에 살았다면... [로즈]

거니gunny 2020. 1. 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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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로즈] 늙은 로즈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아일랜드에 사는 욥의 이야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월광 소나타”를 들어보았다.

약 5분이 넘는 플레이 타임 동안 그녀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을 "월광 소나타"로 지어주고 싶다.

월광소나타야말로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곡이다.

 

월광 소나타를 들어보면 시작부터 끝이 없는 비애가 느껴진다. 몇 초 동안 아주 잠시 희망이 보이는 마디도 있지만 희망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비정한 낮은 베이스 음이 단조를 섞으며 곡을 지배한다.

출처: 영화[로즈]

 

마이클을 만날 그 잠시 동안의 행복감을 제외하곤 끔찍한 어둠의 소용돌이를 지나야만 했던 로즈.

그녀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아니, 질문이 잘 못 됐다.

그녀는 왜 잃어버려야만 했을까?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김과 동시에 그녀의 살과 뼈까지 버려야만 했고, 50년의 삶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세월은 점점 그녀의 짐을 더욱 짓눌렀다.

웬만한 정상인도 미쳐버릴 지경에 이르렀을 텐데 그녀는 강했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강제로 없애는 병원의 횡포에 휘말리지 않기 위하여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아무도 모르게 성경에다가 일기를 쓴다.

 

영화의 마지막은 너무 희망적이어서 오히려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너무 억지스러워서 기쁘지가 않다. 차라리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한 그린 박사의 연극이라고 하는 게 나았을 뻔했다.

더 이상 분노를 퍼부을 대상도 사라지고 없다. 이 지경이 되기까지 모든 일을 꾸몄던 원흉 곤트 신부는 진작 죽어 버렸다. 정신병원에 있던 사람들도 다 사라지고 오로지 로즈만 남았다. 이제 와서 집에 가는 게 과연 ‘구원’일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로즈가 성경 [욥기]의 제목을 바꾸는 장면이다.

"The book of Job"을 "The book of Rose"로 바꾼다.

성경에서 나오는 '욥'은 아직까지도 많은 학자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다.

욥은 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저주가 연달아 내리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 끝내는 하나님과 독대하는 자리까지 나아가 회개한다.

아무 잘못이 없는 로즈는 욥처럼 의문의 재앙을 연달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욥처럼 그녀 또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보는 내내 눈을 감고 싶었던 영화다. 잔인한 장면도 없고, 성적인 노출도 없다.

하지만 사람의 눈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다. 질투와 시기가 만들어낸 증오.

그 어떤 것도 이 증오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리라.

 

로즈 역을 맡은 루니 마라의 표정은 상당히 몽환적이었다.

늙은 로즈 역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또한 온갖 상처를 감내해낸 사람처럼 아련하고 연약해 보였다.

 

출처: 구글[노란 수선화]

 

영화에서 그나마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아마 떠나버린 줄로만 알았던 마이클이 지붕 위를 수리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을까.

로즈와 마이클이 노란 수선화 옆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노란 수선화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로즈의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도 누군가의 것인가에 따라서 그 가치는 천차만별이 된다.

노란 수선화가 꽂혀 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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