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으니 남긴다

결말은 상관없어요 [세 번째 살인]

거니gunny 2020. 1. 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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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세 번째 살인]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이 영화는 추리 영화가 아닙니다. 결말이 중요하지 않거든요.

 

의문투성이인 남자가 있다.

살인한 사람치고는 너무도 담담하게 변호사를 맞이한다.

그리고 너무나 침착하게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사연이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사이코패스일까? 영화는 이렇게 황당한 피고인을 맞이하는 변호사를 따라 사건의 전말을 지켜본다.

 

수도 없이 많은 영화가 있지만 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는 왜 사람에게 끊임없는 호기심을 안겨주는 걸까?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진실’에 대한 갈망 때문일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너무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 설령 나와 1%도 상관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심리는 인간의 본능과도 같다.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에게 질문한다.

심판이 무엇인지,

우리가 심판할 자격이 있는지,

변호란 무엇인지,

진실은 무엇인지,

희생은 무엇인지 등 장면마다 질문을 던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바로 시게모리 아버지의 고백이다. 사건 변호를 맡은 시게모리의 아버지는 공교롭게도 30년 전 동일범을 (재판에서) 구해준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아버지는 적잖이 갈등한다. 만약 미스미가 진짜 살인자라면, 아버지는 결국 미래의 살인자를 살려준 셈이 된다.

그는 열심히 변호를 한 것뿐인데 왜 이런 사태를 맞이해야만 했을까? 변호사의 말솜씨로 살린 사람이 결국 또 하나의 생명을 죽이는 문을 열어준 것이다.

변호사는 자기의 일을 충실히 해야 하는가? 아니면 죽게 놔둬야 하는가?

하지만 결론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만든 재판이라는 제도는 참 웃기다.

기본적으로 피고인에게 죄를 물으려면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 일을 했다고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내세워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객관적인 자료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객관적인 증거에는 사람의 증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재판에서 목격자가 그래서 중요한 거다.

아무리 증인석에서 맹세를 한다 해도, 위증의 처벌 위협을 얘기해도, 증인이 말을 바꾼다면 우리는 진실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재판만큼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출처: 영화[세 번째 살인]

 

역시 두 주인공의 연기가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사람은 파헤치는 사람으로, 나머지 한 사람은 진실을 고뇌하는 사람으로

특히, 살인한 사람치고는 너무 담담하게 고백하는 모습에 약간은 놀랐다고 해야 하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력 또한 대단했다. 가장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장면은 아마 시게모리와 미스미, 이 두 사람이 유리창을 사이에 놓고 대화하는 장면일 것이다. 한 사람은 진실을 얘기하려 하고, 다른 사람은 그 진실을 들으려고 한다. 그때 둘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에게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댄다. 그만큼 관객은 이 장면의 대화가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아닌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끌어올린 명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놓고 또 빠지면 안 될 얘기가 바로 OST이다. 정말 몰랐다. 원래 영화 보기 전에는 최대한 정보를 모르게 하고 보는 스타일인데 영화 OST를 듣는 순간 혹시나 했다. 역시 Ludovico Einaudi의 피아노 소리였다. 그의 음악을 또 들을 수 있었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 말대로 영화가 끝났을 때 비로소 생각하게 하는 영화는 좋은 영화인듯하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영화다.

 

p.s.: 일본의 재판 모습을 본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일전에 봤던 일본 영화 [그래도 난 죽이지 않았어]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한 것 같다.

[라쇼몽]까지 합하면 세 번째 인가? 재판 영화는 언제나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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