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으니 남긴다

애들 싸움 & 어른 싸움 [대학살의 신(Carnage)]

거니gunny 2020. 1. 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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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대학살의 신]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흔히들 얘기하기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은 ‘불구경’, ‘싸움 구경’이라고 한다.

장담하건대, 이 영화만큼 유쾌하고 재미있는 싸움 구경도 없다.

 

제대로 된 싸움 구경을 보고 싶다면 80분만 투자하시라 권하고 싶다.

이상하게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두 아이가 서로 싸우다가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막대기로 때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윽고 아이들의 부모 넷이 피해자 아이 집에 모여 진술서를 쓰기 시작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가 모두 모여 진술서를 쓰다니...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영화 감상을 포기하게 하는 영화. [대학살의 신]이다.

출처: 영화[대학살의 신]

 

이 영화를 볼 때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보는 게 더 낫다.

 

비꼬는 표현이 아니다. 이 영화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말은 더욱 아니다.

이 영화는 정말 유쾌하고 통쾌하고 마지막까지 웃음 짓게 만드는 멋진 영화다.

 

오히려 관객이 영화 보면서 교훈이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할 때 실패할 것이다.(내가 그랬으니까.)

부모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자신의 가면을 벗기 시작한다.

꽁꽁 잠가놨던 감정의 문을 서서히 열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무슨 목적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가정의 민낯을 드러내며 솔직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반전!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야 드는 생각은 하나다.

‘처음부터 솔직했으면 좋았잖아?’

하지만 사회 문명 아래 자란 성인들이 무슨 어린 애도 아니고 어떻게 초면인 사람에게 솔직할 수가 있나.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함이 없다면 사람 사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출처: 영화[대학살의 신] 앨런과 낸시

 

어느 유투버가 한 말이 생각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착함’이 사실은 ‘착함’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선의로 행동했다고 하는 행동은 사실 내 가면일 뿐이고 오히려 인간관계의 피해자를 자처할 가능성이 높다.

마치 페넬로페가 고백한 것처럼 말이다.

 

“옳은 일하면 뭐 해!

착한 게 어리석은 거지!

약하게 보이고 틈만 줄 뿐이지.“

 

사람 사이에서 솔직하지 않고 끝까지 가면을 쓴다면 겉으로는 별 탈 없을 것이다.

인간관계도 원만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면은 끝내 속에서 썩어 상처로 남을 것이다.

 

영화 속 부모들처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것 너무도 잘 안다.

그런 솔직함에는 용기가 필요한데, 사람인 이상 어찌 철면피로 살 수 있겠는가.

 

출처: 영화[대학살의 신] 페넬로페와 마이클

 

고작해야 4명의 배우들이 제한된 공간에서 대화하는 게 전부인 영화는 지루할 거라 생각하기 쉽다.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하다.(실제로 이 연극이 작년에 한국에서도 공연되었다.) 그러나 꼭 연극을 좋아하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관객들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든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력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4명 모두 이미 검증된 연기파 배우인데 한자리에 모여 판을 깔아놨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진짜 술 취한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이미 검증된 배우들이다 보니 믿고 보는 것이었지만 이런 제약 가운데서도 연기만으로 이렇게 흥을 돋우게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조디 포스터는 피해자의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우아한 역할을 하려고 했으나, 끝내는 실패해버린 불쌍한 페넬로페다. 쿨하고 멋져 보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 느끼는 좌절감을 탁월하게 보여주었다.

케이트 윈슬렛은 구토마저 연기력으로 승화시켰다.

크리스토프 왈츠의 익살스러운 연기를 또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나머지 세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장면은 관객조차도 분노하게 만들었다. (핸드폰을 집어던진 낸시에게 박수를 보낸다.) 페넬로페 옆에 있으면서 아내를 도와주려는 모습, 그러면서도 아내 속을 박박 긁는 평범한 남편 역을 소화시킨 존 C. 라일리도 대단한 명배우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화려한 연기의 장을 마련해준 로만 폴란스키의 연출력을 칭찬하고 싶다.

나에게는 여전히 [피아니스트]의 여운이 남지만, 이런 유쾌한 영화를 만난 것도 참 기분이 좋아진다.

 

 

p.s.: 코블러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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