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엘라이자와 괴물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화성에서 온 인어왕자와
금성에서 온 인어공주가
지구에서 만났다.
태어날 때부터 알 수 없는 흉터를 목에 지니고 살아가는 엘라이자.
그녀는 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인이다. 미 과학 연구소에서 청소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아가는 그녀에게 영화 같은 일이 펼쳐진다.
어느 날 난생처음 보는 괴물을 발견하고는 강렬한 끌림 뒤 사랑에 빠진다. 과연 그녀는 괴물과 사랑할 수 있을까?
보잘 것 없는 자들의 사랑 방정식.
어려서부터 말을 하지 못하는 엘라이자는 자신과 처지가 똑같다고 생각하는 괴물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녀는 괴물에게 다가가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괴물에게 관심을 끄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볼품없는 계란을 건네주는 것이 전부였다.
너무도 평범한 달걀이 과연 괴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서로 통(通) 하였는지 둘은 계란을 계기로 서로 가까워진다.
둘 다 말할 수 없다는 제약을 뛰어넘고 오히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핵심이 불편한 영화.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 중 몇 명은 쉽게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울었다고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응?? 이거 보고 울었어??’ 그 사람에게 묻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장면에서 울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래.. 내가 너무 고지식해서 그럴 수도 있어...
아무리 속으로 되뇌고 되뇌어도, 이 영화의 핵심인 “괴물과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수간(동물과 성행위를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영화를 아름답게 볼 수 없었던 것은 나 혼자만일까?
아무리 개방적인 사고를 해보려고 해도 상영시간 내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차라리 영화[홀리 모터스]처럼 난해했으면 좋았을 것을. 난해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더욱 불쾌함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그녀가 마지막 인어로 변한다는 것이다. ‘아! 그래서 그렇게 서로에게 끌렸구나!’ 그러나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녀는 마지막 1분 앞까지는 너무도 완벽한 사람이었기에.
[셰이프 오브 워터]와 [미녀와 야수]의 차이는 무엇일까?
왜 나는 [미녀와 야수]를 볼 때 이런 불편한 마음을 느끼지 못했을까?
[미녀와 야수]는 [셰이프 오브 워터]와 비슷할 수 있지만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있다.
백번 양보해서 괴물과 엘라이자가 사랑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이 둘의 애정이 과연 ‘사랑’이었을까에는 의문이 생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작품 [미녀와 야수]를 보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두 남녀 사이의 사랑이 기승전결 과정으로 명확히 드러났음을 알 수 있다. 처음 야수를 보았을 때 주인공 벨은 두려운 마음과 공포심이 있었다. 차츰 그 감정이 사랑으로 변해, 어느새 관객들도 충분히 그들의 사랑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과정이 지나치게 많이 생략된 듯한 느낌이었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 등장하는 괴물은 단지 치유능력이 있다는 것과 수륙양용이 가능하다는 점 이외에는 동물과 다름없었다.
영화 [컨택트]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외계어를 따로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 [혹성탈출]에서처럼 인간에게 지식을 습득하지도 않는다. 그저 걸어 다니는 물고기일 뿐이다. 자신의 모습이 남들과 달라 고뇌하는 야수의 모습은 없다. 그는 애초에 마법에 걸린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괴물은 여성에게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없었다.
단순히 그녀의 호의에 반응한 것뿐이다. ‘에그’라는 단어를 수화로 따라 한다든지, 음악에 반응하는 것이 괴물이 취했던 반응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새 괴물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두 사이에 기승전결도 없고, '썸'이라고 할 것도 없이 욕조에서 ‘사랑’을 나누니까 어안이 벙벙하다.
“우리 괴물한테 왜 그래요! 첫눈에 반했을 수도 있죠!!”
맞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짧지만 강렬한 첫 만남이 있다. 아무리 썸을 주고받는 시간이 없더라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첫 만남부터 서로 “통했다”라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는다. 과연 이 영화에서도 그런 강렬한 장면이 있었을까? 그런 장면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의 첫 만남은 과학자가 피실험자를 보는 호기심 어린 관심에 가까웠다.
처음 그녀가 괴물을 본 순간은 큰 유리 벽 뒤에 있는 괴물을 바라본 순간이었는데, 그 장면이 강렬하게 묘사되지도, 서로의 강한 끌림을 느끼게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옆집 사는 자일스에게 수화로 말했던 것처럼, (사랑이 아니라) 자신과 처지가 꼭 같기 때문에 느끼는 동병상련으로 인해서 괴물을 구출하려고 했다는 게 더 일리 있어 보인다.
이를 또 증명하는 장면은 그녀와 괴물이 식탁에서 식사하는 장면이었다. 그녀의 머리 속은 한편의 뮤지컬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에 반해 괴물은 자기 앞에 놓여진 계란에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둘이서 성행위를 했다는 것 말고는 오히려 그들 만의 정신적인 교감은 거의 없었기에 그들의 사랑이 여전히 의문인 것이다.
이전 영화 [내 사랑(Maudie)]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샐리 호킨스는 이번 영화에서는 거의 “샐리 호킨스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압도했다.
특히, 말을 할 수 없어 수화로 그녀의 진심을 토로할 때 누구라도 그녀의 진심을 모른 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악역으로 나왔지만 그의 직업 자체가 악역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 안 되는 세상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과거 아무리 공적을 많이 세웠어도 괴물을 죽이지 못하면 매장당하고 만다.
그는 살기 위해 괴물을 찾아내야만 했다. 괴물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게임을 한 것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최고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한지 보는 내내 아카데미의 빛을 충분히 느끼지 못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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