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으니 남긴다

독일판 벌새[수레바퀴 아래서]

거니gunny 2020. 1. 16. 09:04
728x90
반응형

 

 

 

출처: 책[수레바퀴 아래서]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헤르만 헤세, 질풍노도 시기를 회고하며 쓰다.

 

감성적인 청소년들이 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지, 이 책을 보고 나니 알 것 같기도 하다.

청소년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질풍노도’다.

대단히 빠르게 불어오는 바람과 미친 듯이 닥쳐오는 파도와도 같다.

어른들은 섬세한 청소년의 마음을 ‘중 2병’이라 치부하지만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생애 처음으로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청소년이 읽기보단 어른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줄 수도 있다.

청소년 시기를 겪고 나서도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어른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능 프로그램 제목대로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한스의 마음을 어른인 우리가 더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문제투성이 인생들인 우리가 말이다.

 

[데미안]도 그렇고 [수레바퀴 아래서]도 마찬가지인 것이, 무언가 말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헤르만 헤세의 책을 보면 우울과 반항이 충만해진다. 진실에 대한 우울이든, 신에 대한 반항이든, 고위 계층에 대한 반항이든 주제가 무엇이든 칙칙하고, 반항기가 눈에 서려있다. 좋게 말하면 사실적이고, 안 좋게 말하면 지극히 염세적이다.

 

머리가 비상하기로 소문난 한스 기벤라트. 그는 모두의 바람대로 신학교에 멋지게 입학한다. 그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중 가장 염세적이며 반항적인 하일르너를 사귀게 된다.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으로 한스는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공부하기는 글렀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감정의 쓰나미가 한스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한스 앞에 또 어떤 미래가 기다릴 것인가?

 

책 전반부에 등장하는 두 사람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목사와 구두 장수 플라이크다.

한스에게 마을교회 목사는 가까이하기에는 부담 되는 사람이다. 시험에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한스에게 위로의 말은커녕 당연히 붙을 것이라 부담만 안겨준다.

오히려 한스는 구두 장수 플라이크의 말에 더 큰 위로를 받는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헤르만 헤세는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글로 잘 보여주는 데 탁월한 작가이다.

초반에는 한스가 시험 보기 전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떨려 했는지를 잘 묘사했다. 큰 시험 전 갖는 긴장감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그 긴장감이다. 게다가 한스는 마을 사람 모두 인정하는 ‘천재’다. 한 소년에게 지워진 마을의 기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웠을 것이다.

왜 우리는 항상 남위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그것 때문에 노심초사해 하는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처럼 우리는 살아간다. 한스와 다를 것 없는 우리 인생이다.

 

한스가 신학교를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더욱 섬세하면서 복잡 미묘한 심리를 보여준다.

하일르너와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한스의 가장 어두운 시기라고 할 만하다.

하일르너는 너무도 영혼이 자유로운 나머지 한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 거리들을 툭툭 던져버리고 만다.

하루는 하일르너가 한스에게 입맞춤을 한다. (처음 이 장면을 볼 때 이 소설이 동성애 소설인가 의심이 되기도 했다.)

이성에게도 사랑의 눈을 뜨지 못한 한스에게 동성인 친구 하일르너가 입맞춤을 하는 것은 혼란이 될 수밖에 없다. 늘 하일르너는 한스에게 배려심 없이 자기감정에만 충실하다.

 

그러나 우리의 한스는 1등을 하겠다는 의지를 버리고, 힘겹게 하일르너와의 우정을 택한다. 두 사람이 너무 다른 성격을 가졌기에 주위에서 많이 말리기도 하고 걱정도 했지만 한스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다. 결국 그는 성적이 내려가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하일르너와의 관계도 시들시들해진다. 때로는 홀로 남겨져서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한다. 하일르너에게는 한스와의 우정이 최우선 순위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 신문 편집을 하고 싶을 때는 한스에게 말도 없이 해버리고 싫증이 나지 다시 한스에게 돌아온다.

 

한 번은 하일르너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채 학교를 탈출한다. 한스에게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스는 그가 꼭 자살한 건 줄로만 알고 걱정한다. 왜 한 번이라도 한스를 배려하지 않았을까. 반항적인 것은 성격일 수 있다 치지만, 한스를 배려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냥 싸가지가 없는 것이다. 친구에 대한 예의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스는 오해를 받는다. 주위에서 하일르너가 한스에게는 비밀들을 말해주었을 거라고 착각한다.

결국 하일르너의 자유로움 때문에 그를 사랑해주는 친구 한스는 그의 방종에 대한 짐까지 혼자 져야만 했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가 한스를 동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삶에도 한스와 같은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었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삶이 꼬이고 모든 책임을 홀로 져야만 했을 때.

때문에 한스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 되고 동질감을 느낀다.

헤르만 헤세는 이러한 배신과 아픔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마취 없이 살을 도려내는 것 같다.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한스는 도망치듯 기숙사를 떠나고 집으로 돌아와 과거를 회상한다. 그리고 아무 걱정 없이 살던 행복했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비록 그것이 더 큰 희망고문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우리도 그런 과거의 추억 속에 살고 있지 않는가!

에마와의 첫사랑으로 회복되는 듯했다. 언제나 사랑은 달콤 쌉싸름하다. 한스는 에마라는 아름다운 나비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비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이쯤 되면 헤르만 헤세는 청소년기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다 얘기한 것 같다.

시험에 대한 두려움, 긴장, 의지, 안도, 기쁨, 설렘, 좌절, 더 큰 좌절, 상처, 추억, 서툰 사랑, 상실...

 

이제 그런 감정들을 우리가 맞서느냐, 아니면 계속 그 속에서 헤엄치느냐 그게 문제다.

만약 그것을 어떻게든 맞서려고 개구리헤엄이라도 쳐서 육지로 나온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진정한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