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책[악의]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악의
다른 작품에서도 평한 바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과 참 비슷한 부분이 많다.
형사 또는 탐정이 기지를 발휘해서 함정을 파고, 그것을 통해 범인을 잡는 경우는 셜록 홈즈, 즉 코난 도일에 해당한다. (최근에 알게 된 찬호께이도 비슷한 류의 추리 소설을 쓴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추리를 하는 탐정이 직접 함정을 파서 범인을 잡거나 직관적으로 범인을 알아내지 못한다. 그저 평범한 형사보다 조금 더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우리와 거의 같은 시각으로 사건을 따라간다. 그러니 범인이 함정을 파 놓았다거나 의도적인 거짓말을 했다 하더라도 초반에는 주인공이나 독자나 알 길이 없다.
이번 작품 [악의] 역시 기상천외한 괴짜 탐정은 나오지 않는다. 마치 실제 일본 어디 경찰서에 있는 듯한 평범한 형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래서 범인이 깔아놓은 덫에 걸리기도 하고, 거짓에 속기도 한다. 물론 결말까지 보면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으나 뭔가 좀 답답하기도 하고, 고생하는 걸 보면 측은하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작품 또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우선, 확실히 내 취향을 알았다. 나는 아가사 류의 소설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다. 탐정(형사)이라면 모름지기 범인을 가려내기 위해 역으로 함정도 파고, 간파해 내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남아있는 듯하다. 그래서 코난 도일 풍의 작품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둘째로, 곁가지 말들이 좀 많았다.
결말까지 가게 되면 모든 챕터들이 필요한 이야기들이라는 것을 알겠으나 오히려 설정을 위한 챕터를 곳곳에 배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A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미리 B,C를 깔아놓는데 엄청 기능적인 설치로 보였고, 반전을 위한 반전을 깔아놓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형사의 과거 교사를 했을 때 회상이라든지, 초등학교 때 과거를 듣기 위해 굳이 10명이나 증언으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극의 흐름을 방해할 뿐 아니라 과도하게 많은 장치를 심어놓은 듯한 불필요한 설정 같았다.
셋 째로, 결말로 갈수록 흥미가 많이 떨어진다.
전개 부분과 중간 반전 부분까지는 좋았다. 충분히 공감도 했고, 심지어 그 핵심 내용에 대한 생각도 끄적거리며 열심히 봤다. 하지만 결말에 와서 반전이 등장하는데 반전 때문에 소름이 끼쳤다기보단 황당한 반응이 맞는다고 해야겠다. 동기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명불허전은 다르다는 걸 또 느낀다.
취향 차이라서 그렇지 이야기의 짜임새와 정합성은 최고인 것 같다.
그가 쓰는 소재 또한 신선하고, 재미가 있다. 작가에게 있어 이런 풍부한 소재는 엄청난 무기가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만큼 트릭을 낭비 없이 잘 깔아놓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P330
유감스럽게도 우리 경찰은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에는 엄격하지만, 불리한 증거 쪽은 허술하게 지나쳐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런 약점을 기막히게 뚫고 들어온 것입니다.
'책을 읽었으니 남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고 받는 사랑 [무지개를 기다리는 그녀] (0) | 2020.01.16 |
---|---|
내 안의 성령 스위치가 고장났다면?[현대를 위한 성령론] (0) | 2020.01.16 |
독일판 벌새[수레바퀴 아래서] (0) | 2020.01.16 |
[조금 다르게 생각했을 뿐인데] (0) | 2020.01.15 |
친절한 글쓰기 책[내 인생의 첫 책쓰기] (0) | 2020.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