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책[무지개를 기다리는 그녀]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서로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
[무지개를 기다리는 소녀]
우선 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전개가 빠른 책이다.
무엇보다도 전개의 흐름이 딱 좋았다
약간 서정적으로 천천히 가야 할 곳은 천천히 가고,
빠르게 긴장하며 봐야 할 곳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 책의 장르가 무엇일까?
로맨스, 추리, 스릴러, 액션, 스포츠, IT, 인공지능까지.. 온갖 종류의 장르가 믹스가 되어있었다.
도저히 이 소설을 어떤 장르라고 규정하기 애매할 정도다.
그러나 갖가지 장르가 섞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난잡하다거나 이해하기 어렵진 않았다.
저자는 이러한 재료들을 스토리 안에 잘 녹아들게 했다.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책과 영화들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과의 사랑은 영화[허(Her)]에서 이미 나타났었고,
주인공 "구도"가 가진 인생의 무료함은 2018년 일본판 [뇌]를 읽는 느낌이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에서는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지루함과 환멸을 느끼고 끊임없는 쾌락 자극을 줌으로써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구도 또한 너무 똑똑한 나머지 삶에 대한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
P38
예상. 구도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이 ‘예상’이었다.
하지만 결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무료함이 흥분으로 바뀌고,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전개로 이끌려 간다.
마치 엄청난 빗줄기를 맞은 계곡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홍수가 주인공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마치 영화[더 콜]를 보듯 손에 땀을 쥐는 탈출씬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책을 뗄 수 없게 잘 만들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어설픈 반전이 아니라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들이 중반 이후로 계속 휘몰아친다.
작가가 전혀 억지 설정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위화감 없이 반전을 잘 설치해 놓은 듯하다.
이런 반전은 예전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반전과는 또 다른 맛의 반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반전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1. 뜬금없이 하루의 죽었던 의도를 듣고는 사랑에 빠지는 구도.
너무 극적이다. 하루의 독특한 점이 끌리기는 하지만, 하루를 조사한 시점이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구리토가 얘기 몇 마디 한 것에 감동받아가지고는 사랑에 빠진다. 물론 사랑이란 늘 제멋대로여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에 찾아오긴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흐름 속에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구도에게 있어서는 그 계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2. 앞서도 얘기했듯이, 반전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왜 요즘 반전에 심심찮게 성소수 소재가 쓰이는지 잘 모르겠다.
왜 이런 반전이 아니고선 흥미를 끌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개인적으로 문학은 예술이기 때문에 도덕의 기준이 다른 예술들보다 느슨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세대가 세대인 만큼 이제는 성소수에 관한 소재는 만연해 있고,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제목에서 말하는 "무지개"또한 아름답게 볼 수 없었다. 분명 저자가 말한 "무지개"는 남색이 빠진 "무지개"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전은 성공했으나, 그리 달콤하지 않은 반전이기에 찜찜하게 뒷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3. 바둑 기사 메구로는 성경 구절을 즐겨 사용했다. 물론 성경은 종교적인 말씀만 들어있지 않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지혜가 담겨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즐겨봐도 문제 되진 않는다. 그러나 성경 구절을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해서 즐겨 인용하는 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성경도 엄연한 책이기에 문맥에 맞게 쓰인 책이다. 메구로가 즐겨 사용하던 [야고보서]는 그야말로 목숨을 위협받는 신앙인들을 위해 쓴 구절들이다.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꾸는 말씀인데, 그것을 한낱 자기 지껄이고 싶은 속마음을 대변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다지 지혜로워 보이지 않는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1. 인간이 미래를 예상한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주인공 "구도"는 천재였기에,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있었고 그가 예상한 대로 인생이 진행되었기에 의미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물론 일반적인 우리는 주인공처럼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책을 보면서 충분히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하나님을 생각해본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미래를 아신다. 구도는 예상하긴 하지만 100%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야말로 100% 예상하시고, 도리어 자신이 그 미래를 계획하시고 실행하신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구도와 다르게 여전히 선하시며 지루해 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또한 인간과 하나님의 차이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신이시다.
예상을 할 수 있지만 그 예상을 심심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졸지도 않으시고, 항상 신실하시다는 성경 말씀은, 어찌 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하나님에겐 더 큰 부담이실 것이다.
2. 구도가 하루를 사랑했기에 노리코를 용서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뿐 아니라 진심으로 동료로서 함께 해달라고 요청하는 구도의 자세를 나는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구도에 비하면 너무도 연약한 사람이다. 자신을 살인하려고 했던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토닥이며 받아들이는 것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고작 인공지능이 될 하루를 만나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심지어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에게까지 손을 뻗었다.
철저히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구도의 용서와 헌신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P38
예상. 구도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이 ‘예상’이었다.
P221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는소리를 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하루의 인공지능을 만들지 못해서 곤란한 것은 자신 한 사람뿐이다. 자신이 어떻게 하는 수밖에 없다.
P417
노리코는 자신과 닮았다. 자신이 하루에게 계속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노리코 또한 하루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자신은 연애를 하기 위해서, 노리코는 사죄를 하기 위해서. 동기는 정반대지만 목적은 같다. 하루에게 계속 사로잡혀 있기 위해서 자신들은 손을 맞잡았다.
'책을 읽었으니 남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정장애 올 것 같은 신학 [기적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있는가] (0) | 2020.01.16 |
---|---|
존 하트가 말하는 상실의 시대 [라스트 차일드] (0) | 2020.01.16 |
내 안의 성령 스위치가 고장났다면?[현대를 위한 성령론] (0) | 2020.01.16 |
재밌지만 늘 2% 아쉬운 [악의] (0) | 2020.01.16 |
독일판 벌새[수레바퀴 아래서] (0) | 2020.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