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으니 남긴다

왜 한국교회는 좌파와 함께 할 수 없는가 [교회 해체와 젠더 이데올로기]

거니gunny 2020. 1. 1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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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교회 해체와 젠더 이데올로기]

 

예전 교회 선배가 혼잣말로 물었다.

"왜 우리 한국교회는 수구꼴통 우파 편만 들까?

왜 진보와 손잡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러한 교회 선배 질문에 어느 정도 대답을 해주고 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자!

 

@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작금 우리 사회는 혐오 사회이다.

온갖 혐오가 판을 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상황이 있다면 무슬림 난민 혐오, 이성 혐오 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혐오를 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청원이 70만을 훌쩍 넘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18년 07월 31일) 아무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든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퀴어축제 등을 아무리 반대해도

인권과 사람('국민'이라는 명칭에서 '사람'으로 바뀜)의 자유라는 명목 아래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은 종교를 떠나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정훈 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이미 6개월 전에 이 책을 통해 예견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동성애 싸움, 이슬람 난민과 국민 간의 싸움이 아닌 사회주의의 대업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라는 이론을 내놓고 있어 상당히 흥미롭다.

 

책 서론에 등장한 프랑스의 68혁명을 보면 가장 먼저 영화[토니 에드만]이 생각난다.

단순히 아버지와 딸의 가정회복을 그린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장난, 갑자기 발가벗고 파티를 벌이자는 딸의 비논리적인 제안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영화룰 평론하는 평론가들은 찬사를 보낸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이면에는 68혁명을 그리워하는 향수가 젖어있기 때문이다. 과연 68혁명이 영화를 사랑하는 예술계 사람들에겐 얼마나 달콤했는지 알 수 있었던 대목이다. (이러니 다들 문화예술계는 좌파라는 말을 듣지....;;)


P18

68혁명은 볼셰비키와 소련이 추구한 형태의 혁명이 아닌 새로운 세계 변혁의 길을 예비했다. 마오쩌둥의 ‘문화 혁명’을 유럽의 신세대 좌파들이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변형, 수용한 인간 개조의 혁명이 전개된 것이다. 68혁명의 이념은 마오이즘과 음란한 히피 문화, 여기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철학과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 등이 융합되어 형성되었다. 이 저항의 이데올로기는 교회와 전통을 해체하여 유럽과 세계를 변화시켰다.


사회주의는 애초에 시작부터 반(反) 종교적 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인 색채가 있는 사회문화들은 모두 반대할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기독교의 핵심윤리 중 하나인 창조질서, 즉 남자와 여자의 성 구별을 해체하고자 분투하는 것은 당연한 행보일지 모른다.

결국 사회주의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구별을 극도로 혐오하고, 앞장서 성구별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남몰래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비록 그 방법이 비상식적이라 할지라도..어차피 언론에는 포장된 뉴스만 보내면 된다.)

그것이 혁명의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정권이 국민들의 욕을 먹으면서까지 이슬람을 맞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걔네들은 기독교보다 더 심한 성차별을 하고 있는 족속들이다. 이정훈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양극의 성질일 것 같은 성정치와 이슬람 인용 모두 반(反) 교회 정책이고 교회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요소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때로는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선 이슬람의 과격성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그들을 맞이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 젠더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3가지 큰 사상

- 구조주의(소쉬르, 레비스트로스)

- 후기 구조주의(자크 데리다, 라캉) 이시기에 여성주의 신학도 등장함. 후기구조주의에서 강조하는 것은 기존 구조주의가 말하는 ‘대립’을 해체하는 것이다.

- 포스트모더니즘 (68문화 혁명)

 

유럽의 좌파: 1. 전통적 마르크스 주의

2.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

3. 공산주의(슬라보예 지젝)

 

중립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좌경화되어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에릭 제무르의 책 [프랑스의 자살]은 객관적으로 프랑스를 진단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언론과 비평가들은 비난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우리나라에 잘 소개되지도 않았다.)

 

확실히 이 책은 과거 유럽과 한국의 사회주의 사상이 어떤 식으로 변천과정을 겪었으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슈들의 이면에는 어떤 목적이 숨겨져 있는지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항상 궁금했던 질문이 이 책을 통해서도 나온다.

예전 다른 집회에서 사탄의 전략을 들은 적이 있다. 사탄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교회를 무너뜨리려 했는지, 지금도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 등등

그런데 그 많은 시간을 마귀의 전략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얘기는 고작 5분도 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소위 한국 좌파의 역사와 더불어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교회를 무너뜨리는 도구가 되고 있는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정말 열심히 연구했다는 게 티가 날 정도로 세밀하고 정밀하게 분석했다. 실제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객관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모두가 사탄의 전략을 소개한 후 모두가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정신 바짝 차리자”라는 결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생긴다.

그럼 이제까지 마귀의 이런 계략은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고 치밀한데 하나님은 왜 이 치밀한 계획을 가만히 보고만 계실까?

아니,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은 있긴 한 것일까?

 

저들이 말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위기’인데, 마치 당장에라도 한국교회가 무너질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물론 베드로도 늘 깨어있으라고 말한다. (벧전5)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있는 것일까?

고민이다.

만약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면, “이지경이 되도록 가만히 보고만 계셨어요?”라고 묻고 싶다.

그리고 성도들에게도 묻고 싶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게 뭘까요?”

아무리 폭풍우가 쳐도 위기를 느끼기보단 잠잠히 자고 있는 것이 신뢰아닐까?

아니면 마치 하나님이 아무 일도 안 하시는 냥 모든 일들을 우리가 해결하려고 애쓰는 게 신뢰일까?

 

너무 부정적인 모습만 강조하다보니 위기의식만 느끼고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임을 느낀다.

 

정말 모르겠다.

위기를 의식하고 대처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을 의지하는 행위인지 고민이 된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한 문제를 지적함에 있어 굳이 교회를 끌어와야겠냐는 것이다.

 

과연 기독교는 민주주의(그리도 자본주의) 테두리 안에서만성장할 수 있는 종교인가?

난민과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의 대처는 어떠해야 하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단순히 사회주의의 계략이기 때문에 반대해야 하는것인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는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일까?

 

이러한 점에 대해 종교적이고 성경적인 접근을 하지 않고 단순히 기독교 세력의 입장을 놓고서만 다룬다는 점은 여전히 아쉽다.

 

물론, 대한민국의 자유와 존속에 위협을 가하는 세력들을 분석하고 그들의 전략을 간파한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6개월 전에 이 책이 나왔고 6개월이 지난 지금 과연 이 책의 예언과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전혀 국민과 소통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국민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성소수자 퍼레이드를 강행한 점 등(가장 앞서 이들을 환영하고 함께 퍼레이드를 진행한 자들은 바로 정의당 의원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일들에 대해 이 책의 주장이 맞는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보게 된다.

 

계속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인이라면 정말 깨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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