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함과 익숙함은 서로 극과 극이다.
그런데 그 극과 극이 만났다.
익숙함 속에 신선함이 묻어나는 책이다.
(참고로, 이 책은 저자의 전작인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1부를 보지 않았지만 이 책만 봐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지장은 없을 듯 하다.)
1. 우선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푸블리우스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기본적으로 알고 들어가야 한다.
예수를 믿은 유대인이나 NON 크리스천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면서, ‘크리스천’인 푸블리우스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선택과 집중을 한 모습이다.
2. 이 책의 특징은 앞 표지에 나오는 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큰 거실”같은 풍경이 그려져 있는데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죄다 엎드려 누워서 먹고 있는 그림이다. 바로 신약 사복음서에 묘사된 내용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다.
성경 속에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 또는 주인공의 하루를 통해 상세하게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 앞서 말한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인데,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1세기 풍경을 그리기보다는,
신약성경 속 이야기들을 각색하여 말하는 느낌이 강했다.
성경 속에서 바울과 베드로가 말한 부분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성경을 자세히 본다면 굳이 이 책에서 얻는 새로운 정보는 없을 듯 하다.
저자는 주인공이 노예를 가지고 있음을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역시 1세기 기독교인, 그것도 로마인을 다룰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노예제도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노예제도가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언급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는 여간 골칫거리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최대한 부드럽게 묘사하여 노예를 “최대한 젠틀하게 부리는” 방식으로 다루었다. 정확하게 바울이 말하는 방식이다.
그것이 과연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대한 논의는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그래도 1세기를 엿본다는 점에서는 유익한 부분이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얻은 것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 훨씬 많았던 책이다.
1. 역사고증이 된 부분과 소설의 경계가 너무 모호하다
저자는 참고자료를 써놓지 않았다. 1세기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적어도 어떤 고증을 거쳐서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말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을 참고했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무작정 “감동적이죠, 믿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책임 없는 행동이다. 독자는 어디까지가 진짜 역사적 사실 내용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단순히 소설이 아니라면 말이다.
예를 들어 P19에서 주인공이 브리스길라의 조언을 받아 자기 딸도 아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게 하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1세기 기독교 집안 사람들이 딸에게도 아들처럼 동일한 교육을 지니게 했는지에 대한 각주도 참고 서적도 기술되어있지 않다. 젠더 이슈는 오늘 날 현대인들에게 가장 예민한 주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쓰면 어느 누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2. 책 두께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다.
고작 60페이지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6,000원이나 한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물론 출판업계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독자의 사정도 만만치 않게 어렵지 않은가!
차라리 전작이었던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와 이번 책을 한 권으로 묶어서 10,000원에 팔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혹시 1세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정보를 알기 원한다면 만화책으로 되어있는
[의인을 찾아서]를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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