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으니 남긴다

다원주의의 말로[해피아워]

거니gunny 2022. 1. 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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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해피아워를 봤다.

삶의 기준과 잣대 없이 행복을 찾아 헤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줬던 영화.
플라톤이 동굴 밖을 나왔는데 더 이상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동굴 안에서 사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종교든 전통이든 '착각' 속에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저 네사람이 아니다. 남편들도 아니고, 주변에서 계속 집적거린 사람들도 아니다.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사쿠라코의 시어머니인것 처럼 보였다.
젊은 세대가 봤을 때는 너무도 불행해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인생이지만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만의 뚜렷한 주관이 있었고 그 주관대로 사는 것에 만족해했다.
누가 뭐래도 시어머니는 행복해 보였다. 눈치없고, 답답한 아들놈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체성과 행복에 대해서는 단단한 반석 위에 서 있는 듯 보였다. 시어머니에게도 불합리한 상황이 당연히 있다. 손자 가족만 사과해야 하는 억울함. 서로 사랑했는데 한쪽은 가해자, 한쪽은 피해자가 되는 상황. 이러한 불합리함 속에서 그녀는 그냥 뒷담화 한번 하고 훌훌 털어버린다. 의연하다.
누가 이 시어머니에게 “불행한 인생이군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다원주의의 핵심은 "우리는 진리가 뭔지 모른다."이다.
기준도 없고, 주관도 없다. 그저 "너도 맞고, 나도 맞다"를 말할 뿐이다.
모든 것을 인정해버리면 서로가 다 행복해질 것만 같았는데,..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묻고 싶다.
지금은 다원주의라는 말도 잘 안쓰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불과 30년 전만해도 가장 인기있는 학문이 "다원주의"였다.
이제는 저 단어를 인문학 책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만큼 사람들은 아는 것이다. "다원주의"가 결국 허무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행복이라는 것은 나름의 정답을 스스로가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말이다.
그 정답이 맞고 틀리고는 두 번째 문제다.
그 정답에 대한 내 믿음이 확고하고 그 믿음대로 세계를 바라볼 때 희망이 있는 것이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 아무리 틀린 신념이라고 하더라도 우연히 그 신념이 들어맞을 때 그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무서운 점이기도 하다. 신념은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 영화는 다원주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왜 불행한지 잘 보여준다.
왜 다원주의가 행복과 동행할 수 없는지.
일본은 다원주의를 몸소 실천하는 나라 중 하나다.
수만 개의 신전이 있고, 섬기는 신도 다양하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신들을 존중해준다.
배타성이 전혀 없는 이 세상에서 왜 사람들은 행복해하지 못할까.
오히려 이런 무분별한 수용성은 도덕과 기준을 와해시키고 방향성만 잃게 만든다.

유행이 지나버린 다원주의는 이제 더이상 인류의 푯대가 아니다. 때늦은 다원주의를 붙잡고 사는 네 사람의 불행은 이제 타산지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1. 길어도 너~~ 무길다.길다.

영화 [저스티스 리그]처럼 길어야하는 영화가 있다.
어설프게 편집을 해서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
하지만 영화는 편집이 필요한 작품이다.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다.
아무리 감독판이 나와도 편집은 하는 게 상식이고 매너다.
이것도 보여주고 싶고 저것도 보여주고 싶어서 다 집어넣으면
유튜브 초보자가 하는 실수처럼 알맹이는 없고 장황한 쓸데없는 내용이 많이 들어간다.
"이 영화 상도 엄청 많이 받았거든요?!!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네"
그렇다.
현대미술작품과 4살짜리 작품은 언제나 통하는 게 있다.
다만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중간중간에 편집해도 될만한 부분들이 너무 많이 보였는데, 굳이 그걸 다 보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 혼났다.

온전히 영화를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있지만 이 작품은 좀 줄여도 될것 같다.

(대신, 이걸 본 사람들은 약간의 자부심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캬아~~ 난 5시간 18분짜리 영화도 본 사람이야!! 나 자신 칭찬해!!!')

2. 이와이 슌지가 생각난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 영화들이 생각났다. 특히 중간중간 첼로 음악과 일본 자연풍경을 담은 촬영은 영화 [하나와 앨리스]를 보는 듯했다. 일본 특유의 감성이 짙게 베인 부분들이라 보는 내내 신선하고 좋았다.

3. 솔직히 연기는 어색했다.
아예 아마추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긴장하는 부분들에서는 긴장감이 돋보였고, 무거운 분위기를 잘 연출해 냈다.
하지만 중간중간 약간 미세하게 어색한 부분들이 있다. 쓸데없이 연기조가 들어간 부분들이라든지, 아들 뺨을 그런 식으로 치는 엄마라든지. 카메라 앞에서 커튼을 치는 게 너무 티가 나서 아쉬웠던 순간들이 있었다. (사실 이런 부분들은 편집하면 말끔하게 해결되는데 굳이 다섯시간으로 늘리는 바람에 연기자들만 욕 먹는다.)

4. 여자를 모르는 건지, 일본 문화를 모르는 건지...
내가 여자를 잘 몰라서 그러는 건지... 일본 문화를 몰라서 그러는건지… 주인공들의 행동과 대화에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부부지간의 일들을 꼬치꼬치 캐묻는게 당연한가??
“너네 커플 되게 안 친해 보여”라는 말들은 정말 불편하다.
왜들 그렇게 오지랖이신지.
친구라면 오장육부 세포 하나하나까지 다 말해야 하는 존재인 건지...??
말 안하면 마치 심리적으로 병든 사람 취급하고말야...;;
참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일본이 생각하는 친구의 무게는 남다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보다 무거울 수 있고, 때로는 부부지간 보다 깊을 수 있다.
일부분은 이해하지만 모든 걸 공유하는 친구라는 건 이해하기 솔직히 어렵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다른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가 또 있던데, 이것도 3시간 가까이 된다;;;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예술영화에 호감을 보이겠지만,
난 좀 줄여줬으면 한다. 편집을 좀 해주시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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