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별에 별 사람들이 다 모인다.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인생 작품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는가 하면, 클럽에서 실제 삐끼 역할을 했던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다.
그런데 그 중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 기억엔 없었던 것 같다.
기껏해야 만화책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맥심을 좋아하는 정도지, 굳이 책을 쉬는 시간에 본다?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영어 공부를 하면 했지, 장편소설을 읽을 사나이는 적어도 내가 있었던 소대에는 없었다.
(만화책은 검열대상이라 막사 안으로 못 갖고 들어갔다. 참 이상하지 않나?
남심을 마구마구 자극하는 맥심 잡지는 되는데 만화책은 안된다니.ㅎㅎ)
그래도 꼭 휴가를 갔다오고나면 사람들이 양심은 있는지, 근래 인기있는 베스트셀러 하나씩은 꼭 챙겨서 온다.
장르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돈에 관한 책을, 어떤 사람은 근육 키우는 헬스 잡지를,
어떤 선임은 여자 꼬시는 책도 갖고 왔었다.
그런데 그런 책들 가운데 당시 꽤 기억에 남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공중그네]다.
이 책 표지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재밌어 보여서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정~~말 재미없어 보였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즐겨보지 않았을 때여서 더욱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인생사 재밌지 않은가?
그 때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책은 지금에서야 봐다는 사실도 재밌고,
심지어 재밌게 봤다는 사실도 웃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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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지만 군대의 추억이 새록새록 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긴장감이나 머리 아픈 이야기가 아니여서 그런지 정말 누워서 편히 볼 수 있었다.
야쿠자 얘기가 나오는 첫 장면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긴장했지만 이라부 의사선생의 등장으로
모든 이야기는 웃음과 미소가 만연한 감동코미디로 흘러간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흔한 러브라인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참 좋다.
우리나라 소설은 하다못해 정치소설에서도 러브라인이 나온다.
아주 지긋지긋하다.
기-승-전-러브 라인을 안만들면 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나?
하여간,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식상함을 느끼지 않은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또 한 가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좋았던 이유는 내면의 위로다.
소설 겉으로 드러나는 코미디와 해학은 독자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든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내내 전해지는 위로야말로 이 소설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21세기 현대인의 말 못할 고민과 두려움을 이해해주고, 토닥거려준다.
'괜찮아. 너보다 심한 애들도 이렇게 잘 극복하잖아. 잘 될거야.'
소설을 읽는 동안 커보였던 내 문제가 작아지는 놀라운 일을 독자들은 모두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그만큼 평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지 않았난 생각해본다.
이제는 군대의 미스테리가 또 하나 벗겨졌다.
겉표지만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공중그네]가 무슨 책인지 안다.
오히려 지금 읽은 게 잘 된지도 모르겠다.
그 때 만약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 받은 위로보다 과연 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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