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으니 남긴다

반쪽짜리 동성애 신학

거니gunny 2023. 11. 2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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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읽었다. 

IVP에서 낸 책이라 어느 정도 신뢰를 가지고 읽었다. 

과연 교회가 동성애를, 정죄나 비난 말고 신학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인정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반쪽짜리 신학이다. 

책 제목은 분명 "두 가지 견해"라고 했다. 

따라서 얼핏 보면 2명은 보수주의 신학을 대표해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

남은 2명은 진보주의 신학을 대표해서 동성애를 찬성하는 입장으로 말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구성되지 않았다.

4명 모두 동성애를 인정하면서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가 기대하는 논쟁은 이 책에 없다고 볼 수 있겠다. 

 

1. 윌리엄 로더

이 사람 글은 참 특이하다.

글의 절반을 동성애를 반대하는 성경 구절과 고대 문서들에 할애한다. 

그런데 막판에 가서는 “성경 구절들이 현대 실상과 맞지 않다”라는 말을 하면서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는다.
성경 속 내용과 고대 문서들이 "동성애를 반대"한다면 당연히 그 결과도 동성애 반대여야 한다. 

당연한 귀납논리를 왜 하지 않는가? 
대학교 시절 귀납논리 교수가 이 글을 봤다면 분명 D-를 줬을 것이다.

 

P131 로마서 1:27
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메건 드프란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윌리엄 로더는 롬 1:27을 예를 들면서 반박한다.

“상당한 보응”이 여성 역할을 했던 남성이 항문통증이나 여성역할을 한 수치심이라고 해석한다. 

도대체 로더는 어떻게 살았길래 이런 식으로 반박을 할까?? 


아주 그냥 단어 꼬투리 하나 잡아서 성경을 난도질하고 지 맛대로 바꾸어 버리는 사람이다.
하긴 성경 자체는 너무 모호하고 너무 고대문서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저런 비상식적인 해석도 하나보다.
그리고 진보신학들은 성경 이외 고대문서들을 참 좋아한다. 성경이 a라고 말했다면 “다른 고대문서는 안 그러던데?”라고 반박한다. 성경 자체에서 반박을 안 한다. 

 

2. 메건 드프란자

우선 이 사람은 일반적인 신학자가 아니다. 
오로지 Q퀴어를 옹호하기 위해 온 성경을 쥐 잡듯이 연구한 사람이다. 

(그래도 이 사람은 일관성이 있다.)

 

어렸을 때 간성(인터섹스)인이 있다는 걸 새롭게 알고 나서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P112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충격이었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다만 그 소수 때문에 성경을 싸그리 부정해야 할지 아니면 간성은 그저 돌연변이 일뿐이고 남성여성이 올바른 신학관이라고 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가장 흥미로웠던 주장은 창세기 속 양서류의 부재비교다.

성경에서 창조 과정을 묘사할 때 유독 양서류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양서류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녀의 주장은 이것이다. 

"양서류가 창세기에 안나오지만 있죠?
간성인도 창세기엔 안나오지만 양서류처럼 있겠죠?"
(양서류가 잘못했네;;;;)

양서류가 창조 이야기에 없지만 엄연히 세상에 존재하듯이 남자와 여자만 창세기에 나왔다고 해서 남자와 여자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는 게 이 사람 주장의 핵심 중 하나다. 

그렇게 따지면 외계인도 있고, 문자에 등장하지 않는 모든 종류의 생명체가 다 있다고 해야 한다. 

(물론 메건은 그렇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P114-128
고전6:9-11과 딤전 1:10에서 말하는 헬라어 단어가 사실 동성애자를 일컫는 단어가 아니라 성노예나 성매매를 뜻하는 말이라는 주장

신약에서 말하는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사실, 동성애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역사적으로 성노예나 성매매를 착취할 때 등장하는 동성 간 성관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신학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나온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배우기만 하면 나는 더 이상 해석 차이나 번역에서 나오는 문제가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원어를 파면 팔수록 더 꼬이는 상황을 맞이한다. 누구는 원어를 a라고 번역하는데, 누구는 b라고 번역해 버린다.

문제는 이것들 중에 어떤 것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은 비교할 수라도 있지, 딱 한번 등장하는 단어이거나 아예 다른 상황에서 나온 단어들은 깨끗하게 번역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
이 신학자는 이런 원어해석 문제를 파고든다. 어찌 보면 꾀를 잘 냈다고 볼 수도 있다. 

 

메건 드프란자는 결국 로마서가 말하는 ”자연스럽다“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를 가지고 논증한다. 
로마시대에는 워낙 ”자연스러움 “의 범위가 상상초월이기 때문에 ”건전한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거 아니냐는 주장이다.

(성노예도 자연스러웠던 로마사회니까) 이런 거 보면 난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참 원망스럽다.

죄를 명확히 말해줘야지 죄를 안 짓고 살지;;;
2천 년 전 규범을 이렇게 따지는 데 왜 이렇게 모호하게 성경을 만들었냐 이거다.
2천 년 후에 동성애 문제가 대두될 거라는 걸 몰랐나? 아니면 모호하게 일부러 써서 다 지옥에 보내려고 그러나?
결국 이 모든 모호한 성경의 책임은 모든 감동으로 쓰신 성령에게 있다.

또 그녀는 벧후 2:7에서 롯을 향해 "의롭다"라고 묘사한 성경을 딴지 건다. 

롯도 근친상간한 사람인데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면 동성애자들도 의롭다 인정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솔직히 왜 성경 저자는 롯을 의롭다 했을까? 의문이다.

자기 딸들을 불량배에게 헌납한 사람인데;;; 게다가 근친상간도 하지 않았나?


P144
"성경이 특정한 종류의 동성애 성행위를 정죄한다고 해서 모든 동성애 성행위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
레위기의 모든 명령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고 보지 않는다면 이 레위기의 금지도 보편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

— 이래서 성경대로 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메건 드프란자는 감정 다 내려놓고 논리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만약 레위기의 동성애를 죄라고 한다면 우리는 돼지고기도 먹어선 안된다.

주일이 아닌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초대 교회 나부랭이들이 주일 지킨다고 주일 지키면 안 된다.
결국 어디까지 “융통성 있게” 적용하냐의 문제다.


P148
저자는 구약의 할례를 신약의 초대교회가 폐지했듯이

현대사회에서도 동성애금지는 할례처럼 폐지될 수 있다고 하는 논리다.

 

 


3. 웨슬리 힐

 

유일하게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 신학자다. 

웨슬리 힐은 본인이 게이라서 그런지 연구를 많이 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사람도 윌리엄 로더와 결을 같이 한다. 

 

웨슬리가 본 성경은 구닥다리 책이고 바울은 21세기를 모르는 아주 꼰대다.

바울이 말한 탐욕은 성적 탐욕만 말할 뿐 평소 갖는 호감이나 다른 섬세한 동성애 감정은 괜찮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따지면 성경 왜 읽지?

걍 자기 사는 시대가 맞고 진리인데
이 사람 기준에 따르면 성경은 2000년 전에 쓰인 아주 촌스러운 경전이다.
“바울이 뭘 몰라서 그래”


"성경은 ‘불변하는 진리’가 아니라 개혁주의자들과 그들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식했듯 프로 노비스 pro nobis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P171)
--진보신학은 성경을 믿을 마음이 아예 없다.
어차피 진리도 아니라는데 뭐.

"동성끼리 나누는 사랑과 그들이 할 수도 있는 성관계를 구분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후자는 성경이 정죄하지만 전자는 선한 것이다."( P228)

웨슬리 힐은 신체적 접촉을 성경에서 반대하지만 성관계나 접촉 말고 서로 정신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괜찮다고 말한다. 
내가 볼 때는 아주 궁색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플라토닉 러브라도 하려 하는 게 얼마나 궁색한 결론인가. 

 

이 사람 역시 윌리엄 로더처럼 성경 구절들 엄청 인용하면서 “성경 그 어디에서도 동성애를 인정하는 구절은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론은 "동성애 인정해야 한다";;; 
그럴 거면 왜 성경 인용을 했는가?
자기주장에 대한 근거 1,2,3 등등을 성경을 통해 대는 게 아니라 성경 따로 자기주장 따로다.

이들의 결론을 따라가면 결국 ”성경은 구닥다리, 로마시대에나 맞지 현대는 안 맞는 꼰대 책“이 되어버린다.

 

4. 스티븐 홈스 

내심 마지막 주자인 스티븐에게 기대했다. 

앞서 3 명 모두 동성애를 찬성하면서 억지로 성경을 들쑤시고 다녔는데, 

그래도 마지막 사람은 좀 제대로 신학적으로 반박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 사람은 성경빠가 아니라 어거스틴 빠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결혼의 유익을 이해하고자 애썼던 것은 물질세계에 대한 불신이나 성행위에 대한 경멸 때문이 아니라, 부활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 그들이 속한 사회는 죽음에 대한 응답으로서 성을 출산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했다. 그러나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출산을 할 필요도 없었던 그들은 출산의 필요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 성에 대해서 이야 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했다." (P269)
— 모순적이다. 부활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 왜 결혼에 미련을 두는가? 유대교처럼 부활을 믿지 않고 결혼을 선택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으로 보인다.

바울은 고전 7장에서 독신이 결혼보다 낫다고 말하면서 에베소서 5장을 가면 결혼이 일반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오히려 창세기의 명령 재확인,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이미지로 결혼이 사용된다.
이 무슨 모순덩어리 바울인가?

 

스티븐 홈스는 만약 성경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면 동성애뿐만이 아니라 피임 역시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P272-273)
실제로 어거스틴은 아예 피임도 반대했다고 한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성커플의 결혼생활도 잘못됐다고 얘기한다.

(4명 모두 중간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어거스틴의 신학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P274-275)
스티븐 홈스는 현대에서의 피임과 재혼은 어거스틴의 신학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현대에 맞게 현실에 대한 목회적 대응이라고 한다.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도대체 현대에 맞게 변형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목회적 대응이 도대체 뭔가?
그냥 자유주의 신학과 다를 게 뭔가?

앞서 말했듯이 이 사람은 성경을 원칙으로 보는 사람이 아니라 어거스틴 신학을 원칙으로 보고 있다.

성경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고, 1,500년 교회역사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이 자는 성경이 2000년 전 책이기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가 엄청 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성경의 주장은 시공을 초월하여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은연중에 인정하고 있다.

"최소한 우리는 이성애자들이 자기 문화의 성적 규범을-그 규범이 전통적 기독교 윤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따르게 허용한다면 동성애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허용을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P302)

— 결국 이 사람의 말은 “너네 이성애자들도 성경에 어긋난 걸 알면서도 용인하는 것들 있잖아(이혼, 아프리카의 일부다처제). 그러니까 동성애자들도 그냥 용인해 줘. “

하지만 이 사람의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물론 이혼이나 일부다처제 역시 성경에 반(反)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들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 이혼이 부끄러운 건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뿌듯하거나 내 인생에서 성공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들도 저들처럼 부끄러워할 수 있는가?

동성애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으며 성경에 반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교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가?

글쎄다. 회의적이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교회에서 동성애를 ”인정“받고 싶어 하고 이성애처럼 동등한 축복을 받고 싶어 한다.

이런 간극이 존재하는 한 교회에서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은 그냥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스티븐 홈스는 이것을 인정해야 했다. 

 

5. 마무리하면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적어도 이 책의 저자 4명 모두에게는 그 말이 돈키호테 같은 말처럼 여겨질 것이다. 

난 그래도 이 넷 중에 한 명 정도는 동성애에 대해 성경적 접근을 할 줄 알았다. 너무 실망했다.
네 명 모두 전혀 성경적이지 않고 성경을 오히려 반대하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렇게 성경을 도외시하면서 어떻게 신학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게 현실인가?

이게 주류 신학인가?


옮긴이의 글 양혜원 씨의 맺는말을 보면서 이 책은 반쪽짜리 책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먼저 한 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이 책의 저자들 중에서 동성애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현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하 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P356)

그렇다. 애초에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동성애를 인정하고 있다.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이 책은 완성될 수 있다.

동성애에 대해서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편 가르기" 나 "편들기"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것 역시 하나의 의견이고, 논리니까. 

하지만 성경에 근거하여 결론을 도출시키는 너무도 당연한 성경적 주장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덕분에 동성애를 인정하는 신학이 왜 이토록 엉성한 지 알게 됐다. 

"오컴의 면도날"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계속 자기가 인정하기 싫다고 해서 이리저리 핑계를 늘릴수록 논리는 엉성해지고 궁색해진다. 

 

IVP라고 해서 꽤 심도 있는 주장들을 볼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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