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으니 남긴다

사회소설이 가진 매력 [La vie devant soi(자기 앞의 생)]

거니gunny 2020. 1.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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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확실히 유럽계통 소설이라 그런지 미국 소설과는 다르게 뭔가 황혼이 짙게 깔리듯 어둑어둑하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은 느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예전 "리스본행 야간열차", "글루미 선데이" 영화를 볼 때 느낌이랄까.

(물론 너무 일반화시키는 것 같지만, 적어도 영화나 소설이 주는 느낌은 미국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 책은 마지막 50페이지를 위해 앞부분을 그렇게 서서히 전개시켰던 모양이다

마지막은 참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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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자기가 "생"을 어떻게 상대하고 있는지 반복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 이 작가는 계속해서 생에 맞서고 대항하고 있다.

마치 하이데거의 "기투"를 보는 듯 하다.

 

이 소설에서 단순히, 세상에 던져진 "피투"된 존재라는 것에 순응한다면, 이보다 우울한 14살 아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주인공 모하메드는 소설 내내 자기가 원하는대로 반항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물론, 그렇게 마음대로 안되는게 세상사이지만 그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내고 있다. 그것이 설령 죽음일지라도.

 

주인공은 그렇게 생과 죽음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옆에는 로지아주머니와 하밀 할아버지는 가장 가까운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병과 늙음으로 인해 죽음을 가까이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어린 모하메드는, 어리지만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생을 객관적으로 대

할 수 있는 자가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의 저자 로멩 가리(=에밀 아자르)는 자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자살한 것은 충격적인 소식은 아니다. 적어도 이 소설을 보고나면, 이 작가가 삶과 죽음을 어떻게 대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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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프랑스는 여러 계통의 인종이 살고 있는 나라이다. (어쩌면, 지금이 더 심할지도... 언젠가 정말 프랑스가 무슬림의 나라가 되는 날이 오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이 소설은 그런 프랑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사회적으로 아주 말도 안되는 비주류들의 이야기지만 분명 그들도 프랑스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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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논쟁은 인류와 의술이 존재하는한 끊임없이 있을것이다

(최근 21세기 영화가운데서는 알파치노 주연의 [유돈노우잭]이 이 안락사를 실화에 근거하여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

이 소설에서도 영화처럼 안락사를 시키지 않고 병원에 가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는 카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사실은 우리 인간을 위한 마지막 배려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안락사를 고민하는 이유는 인간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선택 할 수 없다는 도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설령 자신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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