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책[우울할 땐 뇌 과학], 우측 사진은 이 책의 저자인 앨릭스 코브.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어떤 이는 이 책을 두고 “지금까지 우울증 책 중 가장 헛소리를 안 하는 책!”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2018년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인 [우울할 땐 뇌 과학]을 들여다보았다.
우선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두 가지이다.
첫째로,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연구자 혹은 과학자로서 우울증을 다루지 않았다.
자신 또한 과거에 우울증에 빠진 경험이 있기에 독자들에게 더욱 신뢰감을 주었고,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두 번째로, 똑 부러지는 해결책이다.
그 해결책이 다소 싱거울 수 있다. 책을 읽다가도 ‘이거 너무 뻔한 얘기인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매우 싱거운 방법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그런 방법들이 효과가 있었음을 실험을 통해 증명해주고 있으며, 뇌 과학의 이론상으로도 이것이 왜 도움이 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평소 심리학을 신봉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뇌 과학이라는 분야도 썩 달갑게 들리진 않았다. 인간의 유형이 너무도 많은데 그런 유형에 맞는 처방전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본 뇌 과학은 (100%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고, 납득이 될 만한 방법으로 우울증을 다루고 있다.
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울증을 영적 싸움이 아닌 뇌 회로 방향 오류라고 인식하는 것부터가 나에겐 생소하고 충격이었다. 이를테면, “감사하라”라는 챕터에선 신기하기도 했다. ‘아니 어떻게 신앙을 언급하지 않고도 이렇게 감사라는 주제가 나올 수 있지?’ 당연히 뇌 과학이니까 “감사”에 대한 주제를 과학적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분명히 말해 둘 것은, 이 책은 우울증에 대한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과학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너무 많으면 우울증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몇 년 후에는 세로토닌 결핍이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설로 바뀌었다. 지금 우리는. 우울증이 훨씬 더 복잡한 문제라는 걸 안다.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이 관련된 것은 분명하지만, 도파민을 비롯한 다른 신경화학물질들도 관련돼 있다.”(P35)
불과 50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학설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따라서 이 책이라고 해서 100% 옳은 방법일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태도를 “참고”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어떤 점을 “참고”해야 하는 걸까? 사실, 뭔가 뾰족한 묘수가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태도임에는 틀림없다.
군대 있을 때 핵폭발에 대처하는 법을 다룬 표지판을 본 기억이 난다.
내용인즉슨, 핵폭탄이 터지면 바로 땅에 엎드리되 귀와 눈, 코를 막고 입을 벌린 채 대기하라는 설명이었다.
그걸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핵폭발이 일어나면 그냥 다 죽는 건데 입을 벌리고, 엎드리라니.. 무슨 방법이 그러냐....’
터무니없는 대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뇌 과학적으로 봤을 때는 이런 대처 방식은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생각해낸 상황 파악이나 묘수가 실제로는 틀렸거나 효과가 없을지라도 우리 뇌에는 안정감을 준다는 이야기다.
걱정과 불안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흥미로웠다.
걱정과 불안은 우울증의 두 가지 큰 증상이자 원인이기도 하다. 걱정은 주로 전전두피질과 전방대상피질의 몇몇 부분이 연결되어 매개한다. 이에 비해 불안은 변연계 내의 회로들이 매개한다. (P63)
이 대목을 보면서 문득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가 생각났다. 루이스도 인간의 특징을 얘기한 바 있다.
동물들은 현재 겪는 일들만 고통스러워하지만 인간은 과거일 뿐만 아니라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 일들을 걱정해하며 고통스러워한다.
따라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 겁먹고 걱정하는 것은 인간의 특성이라고 루이스가 정의한 바 있다.
이미 100년 전에 현대 뇌 과학의 이론을 꿰뚫은 그의 통찰력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상당히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저자가 말하는 “바이오피드백” 내용을 보아하니 노홍철이 생각났고, 웃음전도사였던 고(故) 황수관 박사가 생각났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웃어야 행복해진다는 말이 뇌과학적으로는 맞는 말인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찡그리지 않도록 선글라스를 생활화하고, 턱의 긴장을 풀어야 하며,
천천히 호흡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런데 은근히 많은 지면에서 “호흡”이라느니, “마음 챙김”이라느니 동양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뇌 과학이 내놓은 해결책들 중에는 종교가 말하는 요소들이 다분히 들어있다는 점이다.
요가라든지 호흡법이라든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긍정의 힘(?), 감사하기 등등
물론 이 사람이 얘기한 것은 뇌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목표와는 차이가 있다.
요가, 단전호흡, 감사하기 등의 목적이 실용적이라는 얘기다.
과거에는 요가를 하는 것은 해탈하기 위한 목적이고, 감사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얻으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목적은 숭고하지 않다. 좀 더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하기 위해 하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김새는 것이 사실이다. 뇌 과학에서 말해주는 해결책들이 뾰족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요가”, “호흡”, “감사”라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나는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잇, 이런 분석도 너무 부정적인가? )
할머니는 매번 감사하라고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가르쳐주신다. 난 할머니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이게 감사할 일이에요? 할머니는 너무 낙천적이신 거 아녜요?’
그런데 15년 넘게 뇌 과학을 가르친 UCLA 대학교수가 뇌 과학에서 감사하기를 권장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오늘부터 자기 전에 이 책이 말한 대로 감사 일기를 한 번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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