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두고 아껴보고 싶은 작가” - 찬호께이
보통은 중고책을 읽는 편이다. 품질 좋고 저렴한 책 말이다. 하지만 바로바로 새 책을 사야만 할 때가 있다.
바로 찬호께이의 작품들이 나올 때다.
도저히 중고책으로 나오기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이제까지 한스미디어에서 번역되어 나온 찬호께이의 모든 책들은 다 읽어버렸다.
당연히! 이번 디오게네스 변주곡도 예약구매까지 해서 읽었다는 거 아니겠어? ㅋㅋㅋ
과연 이번 [디오게네스 변주곡]은 찬호께이의 이름에 걸맞는 작품일까?
우선,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니라는 걸 알아둬야 한다.
지난 10년간 그가 간간히 썼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모음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 책을 보는 내내 데쟈뷰처럼 불현듯 “데이비드 크라우더 밴드” 앨범 [Give us rest](2012)이 생각나는 건 왜 일까?
아마도 이번 [디오게네스 변주곡] 구성방식과 나무도 흡사하다.
짧은 스토리들 사이에 제법 굵직한 이야기들을 배치해 독자로 하여금 균형있는 감상을 하게끔 도와준다.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할 수 있다.
게다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찬호께이만의 독특한 반전이 숨어있다.
첫 챕터부터 뒤통수 조심하시길.
역시나 찬호께이의 반전은 보통 반전과 다르다.
앞에서 적이 다가올 것을 예상했는데 결국 내 옆 건물을 빙 돌아 내 뒤를 몽둥이로 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 뒤통수가 어이없거나 위화감이 전혀 없다. 당하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짜릿함이 있다. (찬호께이는 정말 진짜다.)
<파랑을 엿보는 파랑>
도덕과 법의 경계를 정말 예리하게 써 나간다.
이런 줄타기는 그의 장편소설 [13.67]에서도 느꼈다.
주인공은 깨끗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범인을 잡지 않는다. 어찌보면 같은 진흙탕 싸움이다.
하지만 그런 싸움 속에서도 분명한 건 우리 편이 이겼다는 것이고, 거기에는 희미하나마 “정의”가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난 찬호께이의 방식이 완전 마음에 든다.
사실, 중간중간 별로 와닿지 않은 스토리들도 꽤 있다.
머리위에 괴물이 보인다는 스토리는 추리도 아니고 장르가 낯설어서 별로였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몇 페이지 밖에 안되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런 작은 스토리도 완성도가 높다.
상당히 모험적인 소재를 많이 이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그램으로 따지면 신선한 파일럿 프로그램 같은 이야기이다.
90년대 영화에서 봤을 법한 소재들이지만 찬호께이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했다.
[시간이 곧 금] 같은 소재가 그런 예이다.
(하지만 결말은 비추...찬호께이는 절대 로맨스는 건드리지 않았으면 한다. 반전이 있었지만 그 반전이 시원찮으면 그것만큼 시간이 아까운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숨어 있는 X>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챕터.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에 실망한 이가 혹시라도 있다면 이 챕터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챕터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말대로 밝고, 경쾌한 이야기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던 챕터였다.
[풍선인간]처럼 단편을 좀 더 확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도 생긴다.
그나저나 확실히 찬호께이 인기가 높은 가보다.
보통 작가였으면 상상할 수 없는 "단편모음집"이 나왔으니 말이다.
메모에 불과한 이야기 모음집을 작가 이름만으로 열광하면서 읽고 있는 나를 본다.
그런데 재밌는 걸 어떡해!!!!!
하지만 다음 작품은 정식장편소설이어야 한다.
단편집도 재밌지만 장편소설만의 큰 이야기도 엄청 재밌으니까 말이다.
찬호께이의 팬이라면 반드시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은 [디오게네스 변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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