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오랜만에 정말 좋은 영화를 본 것 같다.
언뜻 봐서는 범죄 영화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사랑 영화인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 사랑인지 함정인지 계속 확인하고 싶은 영화.
박찬욱 감독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놀랄 영화.
영화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을 봤다.
한국에서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알만한 영화감독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올드보이”를 만든 감독, 박찬욱 감독이다.
박찬욱 감독을 보면, 어떨 때는 데이빗 핀처가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가슴 절절한 왕가위가 보이기도 하다.
물론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감독이기도 하다.
"박찬욱"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충분하다.
“올드보이”를 포함한 복수 3부작 영화로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6년 만에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돌아왔다.
이번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드디어 감독상을 수상하게 됐다.
어떤 영화였길래 감독상까지 수상하게 됐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제 생각은 “이 영화는 충분히 칸 감독상 받을 만하다.”였다.
헤어질 결심 줄거리
부산 서부경찰서 강력팀 소속 경감 장해준(박해일 분).
그는 형사로서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이다.
멀리 이포에 가 있는 아내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성실한 가정을 돌보기도 한다.
"주말 부부"이기는 해도 나름 행복해 보이는 생활을 보낸다.
어느 날, 구소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기도수씨.
추락사한 것처럼 보이기는 한데 이니셜이 새겨진 여러 물품들을 보며 장해준 형사는 의문을 가진다.
장해준은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기도수의 아내 송서래를 경찰서로 부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여자는 중국인이었고, 한국말이 서툴다고 말하며, 남편의 시신을 보고는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라는 말을 합니다.
마침내라니…
단어 선택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한다.
이후 기도수의 시체에서 손톱에 서래의 DNA가 발견된다.
이 단서를 통해 해준은 서래를 경찰서로 또 소환하는데 심문을 하던 중 점차 서래가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수사는 서래에게 호의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해준에게는 이성으로 느끼는 감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서래가 노인 전문 간병인으로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해준은 서래의 일터, 그리고 집을 잠복하며 서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서래가 매주 월요일마다 간병하러 가는 '월요일 할머니'와 만난 수완도 서래가 손녀딸처럼 잘 대해준다는 진술을 듣게 된다. 결국 남편이 죽은 월요일에도 예정대로 간병을 왔다는 할머니의 증언, 출근 확인 전화, 출퇴근 시간의 CCTV 영상을 통해 알리바이가 확인되어 서래는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제는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난 서래였기 때문에 해준은 자연스럽게 그녀와 저녁식사도 함께 하고 데이트도 하며 가까워지게 된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우연히 해준이가 서래 대신 월요일 할머니 간병을 돕게 되는데 월요일 할머니가 서래와 같은 기종의 폰을 쓴다는 사실과 할머니 핸드폰에 설치되어 있던 계단 오르기 앱에 기도수의 사망일에만 138층이 기록된 것을 발견한다.
갑자기 해준은 기도수의 사건이 사고사가 아니라 살인사건이라는 의심이 생기게 되는데...
과연 기도수는 어떻게 죽은 걸까?
서래는 정말 남편을 죽인 걸까?
해준과 서래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1. 헤어지지 못하는 관객들.
From now on, Spoiler alert!!
만약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우선 이 영화를 다 본 후에 읽기를 추천한다!
이 영화는 정말 이상하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이 영화가 생각이 난다.
영화가 엄청 어렵다거나 난해하다거나 한 것이 아니다.
영화 중간중간 보여주는 상징들과 섬세한 심경변화들이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영화가 끝나도 엄청 궁금해지게 만든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가 끝이나도 쉽게 의자를 털고 일어나지 못한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마음이 엄청 뒤숭숭하다.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낀 비슷한 영화가 옛날에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 영화가 대표적인 예다.
한 번만 봐도 스토리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영화 중간중간 보여주는 애매한 부분들이 사람을 아주 미쳐버리게 만든다. 그래서 N차 관람을 하기도 한다.
영화 제목은 "헤어질 결심"인데, 도저히 이 영화와 헤어질 결심이 안 생기게 만든다.
원래 박찬욱 감독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충격적인 소재와 끔찍한 비주얼이 낭자하던 작품들이 몇 개였던가!!!
그런데 이번엔 제대로 각 잡고 가슴 절절한, 수수께끼 넘치는 영화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는 계속 안개가 등장한다.
주인공 해준의 아내가 일하는 일터이기도 하고, 영화 후반부에서 남편 해준이 같이 사는 곳이기도 한
'이포'라는 곳은 안개가 많다.
이 안개는 이 영화의 아주 중요한 단서라고 볼 수 있다.
안개의 특징이 무엇일까?
안갯속은 앞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두 주인공의 결말 역시 안개와 같다.
전반부에서는 서래가 정말 범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서 안개 같고,
이 여자가 정말 나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도 않아서 안갯속을 걷는 것 같다.
후반부에서는
서로가 감정을 다 밝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끝날 때까지 결말을 알 수가 없어 안갯속이다
여자 주위로 두 명의 남편이 죽어버렸고, 해준 형사도 이미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렸다.
또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진한 색감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빨간색과 청록색인데,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이 색이 가지는 의미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동의한다.
특히 빨간색이 강렬했는데, 중간에 해준과 아내가 건강을 위해 석류청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 석류 역시 빨간색이다. 그런데 그 석류가 꼭 사람의 피 같이 아주 진하게 나온다.
또 주인공 장해준이 생선을 다듬는 모습에서도 빨간 피를 볼 수 있다.
너무 강렬해서 관객들은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거다.
스토리 상 해준은 피를 보면 많이 힘들어한다고 하는데, 의외로 빨간색이 자주 등장한다.
그 외에도 청록색 옷을 입고 등장하는 서래가 있다.
누구에게는 파란색으로 비치고, 누구에게는 초록색으로 비치는 신기한 옷이다.
이렇게 어느 색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애매한 모습들이 이 영화의 스토리와도 연결이 된다.
그러니까 관객들이 바로 일어서질 못 한다. 이런 상징들이 너무 궁금하니까.
영화가 끝나도 헤어지지 못하는 영화 “헤어질 결심”.
2. 범죄 영화? 멜로 영화?
영화 초반에는 영화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 같은 범죄 누아르가 아닐까 생각했다.
치명적인 "팜므파탈"의 매력을 가진 여성 용의자와 그를 사랑하게 된 형사.
그렇다.
딱 "원초적 본능"이다.
영화 후반부에 해준이 송서래의 요청에 의해 어머니의 유골을 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뿌리는 장소가 산 꼭대기입니다.
산 꼭대기는 어떤 곳이었나요?
가뜩이나 이 여자의 전 남편이 산에서 추락사했는데, 그 범인이 바로 서래라는 걸 알고 있죠.
왜 나에게 똑같은 상황이 올까?
정말 이 여자는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희생자일 뿐인 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해준에게는 답답함을 넘어 그 순간만큼은 공포였을 거다.
그런데 중반 이후부터는 원초적 본능과는 전혀 다른, 알 수 없는 긴장감 속에 스토리가 흘러간다.
이 여자가 범인일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과연 이 둘이 어떻게 끝날까가 더 중요해진다.
이 영화를 보는데 옛날 “팬텀 스레드[Phantom Thread]”가 생각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이 팬텀 스레드에서 여자 주인공은 남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일부러 독이 든 음식을 먹인다.
그래야 남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연약해져서 자신을 바라볼 테니까.
아주 일그러진 사랑이다.
이것이 과연 사랑일까 집착일까 질문하게 만든다.
이번 영화 “헤어질 결심”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유부남인 이 남자가 자신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다가오게 만들기 위해서 계속 자신은 용의자 suspect가 되어야 하고 사건은 미결 사건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남자는 나를 계속 쳐다볼 테니까.
사랑과 집착의 경계선에서
또는 불륜과 사랑의 경계선에서 안개가 자욱이 끼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3. What if…?
전직 판사 도진기 씨가 쓴 한국 소설 [합리적 의심]이라는 소설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인연의 순열조합"
만약 누군가를 과거에 더 일찍 만나서 알았더라면.
만약 누군가를 미래에 더 늦게 만나서 알았다면.
인연의 순서가 조금만 바뀌었더라면 인생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가정할 수 있다.
만약 해준이 서래를 결혼 전에 미리 만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서래가 자기를 사랑해주고 믿음직하게 지켜주는 해준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마지막 서래가 바닷가에서 자살을 시도할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 둘이 이렇게 용의자와 형사와의 관계가 아니라
다른 위치에서 다른 시기에 만났더라면 이 보다는 덜 슬프지 않았을까...
아주 일그러지고, 너무도 위태로운 사랑이지만 이렇게라도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던 것이고, 그만큼 그를 사랑했던 거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 이후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면서 여운이 남는 영화는 참 오랜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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